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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Nov 02. 2019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

‘외주의 경제’를 바라보는 투박하지만 정확한 시선

https://www.imdb.com/title/tt8359816/

영화는 주인공 리키가 택배 회사에 들어가서 매니저와 나누는 대화로 시작한다. 깜깜한 화면에서 나오는 음성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얼마나 성실한 노동자인가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순식간에 그의 입장에 몰입할 수 있다.


반면, 그 뒤에 이어지는 매니저의 멘트는 2010년대 지금의 경제/노동 시장을 명확하게 꿰뚫으며 영화의 핵심적 주제뿐 아니라 이야기의 결론까지도 드러낸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고용인/피고용인의 형태가 아니라 원청/하청의 형태로 노동 시장에 참여하게 되고, 이니셔티브를 가진 프랜차이즈 가맹 주라는 거창한 명칭이 주어진 노동자들은 모든 책임이 지워지는 것.

이렇게 초반부에 이미 모든 것을 내놓은 켄 로치 감독은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는 듯하다. 그 덕에 우리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형태의 영화를 목도한다.


감독은 곡선을 이루며 상승하고 하락하는 선형적인 내러티브가 아니라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이 4인 가족의 상황을 조각하고, 그를 통해 점차 무너지는 전통적 가족형태가 세밀히 드러난다.


전작 다니엘 블레이크의 메시지는 극 중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어머니의 에피소드로 이어지는데, 작년 유럽을 뒤흔든 딜리버루/글로보 배달부의 노동자 지위 인정 소송에 큰 영향을 받은 탓인지 주인공 리키는 택배 배달부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보다도 감독의 시대인식이 너무나 정확하다 느낀 것은 극 중 아들의 캐릭터 묘사 탓이었다.

아들 세대는 앞선 세대가 무너지는 상황을 목도하며 ‘시스템은 무너졌고, 본인을 포장하고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무엇이든 해서 생존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미 내 버린 것.


이미 자신으로부터 두 개의 세대가 지난 인물의 상황을 보여주었는데, 내가 바라보는 작금의 상황과 거의 비슷했던 것. 어찌 보면 나는 극 중 아버지 세대에 더 가깝지만 두 세대의 중간에 놓인 상황인데, 거의 팔순에 가까운 감독이 나와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다니엘 블레이크, 지미스 홀도 그렇지만 켄 로치의 영화는 항상 수더분하니 올곧고 잔잔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는 자신의 메시지를 시대에 맞게 풀어내고 소통하는 것이 진정 대단하고, 큰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조금씩 다른 소주제를 던지면서도 세 인물에게 담긴 메시지는 결국 크게 ‘체제의 실패로 내몰리는 개인’이라는 점에서 서로 맞닿아 증폭되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제목도 직유에 가깝고, 영화의 만듦새도 너무 투박하고 직선적이었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태도와 너무 맞닿아서 묘하게 좋았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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