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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Nov 10. 2019

더 페어웰 (The Farewell, 2019)

If Beale Street Could Talk에 대한 아시아의 응답

https://www.imdb.com/title/tt8637428/

우선 영화의 분위기가 매우 아트-시네마 같은 느낌이라서 보는 내내 기분이 따뜻했다. 현악을 주로 사용한 스코어도 그렇고, 중간중간 들어가는 풍경 샷에서 상당히 배리 젠킨스의 영화들과 비슷한 기운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If Beale Street Could Talk에 대한 아시아 이민자 버전의 대답인 것도 같고. 두 작품을 나란히 두고 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다(결국 집에 와서 TV로 다시 봄).

어쨌든 틀에 박힌 이야기였지만,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던 것은 1) 멋들어진 만듦새와 스코어, 2) 극의 중심을 지켜내는 아콰피나의 연기, 그리고 3) 간간히 비치된 세부적인 디테일들에서 느껴지는 세심함 덕분이었다.


아콰피나의 원 톱 영화인 셈인데, 전체 극의 차분함과 잘 들어맞으면서도 기존 캐릭터가 적당히 섞인 연기가 너무 좋았다. My Vag, 오션스 8에서 이어져 오던 quirky 함과는 다른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너무 좋아 보였다.


‘이것이 동양의 문화다!’를 외치는 뜬금 인서트 컷

결혼식을 앞두고 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는데, 가족들을 뒤에 두고 할머니가 기원하는 내용과 그 순서가 너무나 남아선호 사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통에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고. 마지막에 한사코 나오지 말라는 것을 배웅하러 내려가시는 할머니의 모습도 기억에 남으며 한국에서도 볼 법한 모습들이라서 뭔가 친숙했다.


이 모든 것들을 보며 동양의 문화가 이렇게 중심이 되었던 할리우드 드라마극 영화를 지금껏 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또다시 들기도 했다.

러닝 타임 내내 밥만 먹는 영화

수많은 식사 장면들과 그 속 대화의 디테일들도 인상적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화는 중국에 남은 고모네 가족과 미국에 이민 간 빌리 엄마(고모에게는 올케인) 사이의 대화.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에 갔는데도 중국에 있는 우리들보다 경제적으로 나은 것이 무어냐”와 “그래도 니 자식을 미국으로 보낼 작정이면 대체 무엇하러 우리를 비판하느냐”의 대립은, 확실히 그동안 중국의 경제적 성장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같은 대화 장면에서 또 포착한 부분은 아버지 세대의 두 형제의 ‘중국(모국)’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첫째는 그래도 일본(동아시아)으로 이주하고, 둘째는 아예 미국(서구권)으로 이주한 데서 생기는 차이. 물론 그 인물 자체의 차이이거나 장남/차남에서 기인하는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왔던 것: 빌리라는 캐릭터

빌리는 계속해서 발산하고 표현하는 캐릭터의 입장을 취하는데, 그것이 중국의 전통적인 가족 사회 안에 놓이면서 강제적으로 간접적인 방출 방향을 찾게 된다. 여기서 멀뚱한 아콰피나의 마스크가 묘하게 이 캐릭터의 폭발을 정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또한, 빌리를 다루는 영화의 방향도 차분하게 시간을 두고 터트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덕에 처음에는 막연하게 ‘자기중심적 서양의 사고’에 기반한 것 같았던 빌리의 중국 방문이 결국 이민 1.5세의 아픔에서 비롯했단 것임이 나타나는 순간도 더 큰 울림을 얻게 된 것 같다. 또 빌리의 구겐하임 장학금도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미국에서 거의 평생을 지낸 빌리도 결국 중국의 가족 문화에 기반한 행동을 하고 있었음을 드러내게 되고.


딴 얘기지만, 영화의 절반 이상이 중국어 대사라서 예상치 못한 스페인어 자막 독해.....
생각해보면 중국계 미국인 1.5세가 중국에 돌아가서 겪는 이야기였는데 당연히 예상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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