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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Dec 03. 2019

겨울왕국 시리즈가 쏘아 올린 새 지평과 그 한계

크게 확장시킨 담론, 교묘하게 다시 여며 잠그기.

겨울왕국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목이 거창하지만 새로운 얘기는 아닙니다.

https://www.imdb.com/title/tt2294629/

뜬금없지만, IMDB 링크를 걸면서 새삼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벌써 6  작품이라니!


어쨌든, 겨울왕국은 개봉 당시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 1) 디즈니가 여성 캐릭터만으로도 온전한 서사를 구성했다는 것, 2)그리고 디즈니가 소수자 서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


남성은 거들뿐

겨울왕국에는 두 명의 남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한스와 크리스토프. 전자는 그동안 디즈니에서 선보인 이상적인 남성-이웃 국가의 왕자-을 선보이는 듯하다 뒷부분에서 이를 비틀다 못해 깨버린다.

사실 둘이 부르는 초반부 넘버부터 어느 정도 예고된 결말이었지만.

그리고 후자인 크리스토프. 슈렉을 흡수한 이후 디즈니가 새롭게 잡은 노선이 뇌리에 박힌 관객은 초중반부가 지나면서 진정한 남성 주인공은 크리스토프라는 것을 예측한 채 관람하게 된다.

크리스토프의 참사랑(....) 스벤 목소리까지 겨울왕국2에서 조나단 그로프가 한 것은 어쩌면 크리스토프를 온전한 무성애적 존재로 만들려는 제작진의 음모가 아니었나 싶은 정도....

그런데 딱히 크리스토프는 중/후반부가 되도록 하는 일이 없다. 그저 안나를 열심히 실어 나를 뿐이고 심지어 겨울왕국 1의 플롯이 끝나도록 크리스토프의 사랑은 대응받지 못한  끝나고 만다.


결국 안나를 곤경에 빠트리며 극의 위기를 조성하는 것과, 그 갈등을 해소하는 것 모두를 엘사가 해치우면서 겨울왕국은 ‘없어도 되지만 어쨌든 고전적인 이성애적 관계도를 위해 남성 등장인물을 보조바퀴처럼 달고 달리는 두 발 자전거’가 되어버렸다.


핍박받는 초인, 어디서 많이 봤는데...??

엘사는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이 사회에 해를 끼치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통제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온다. 그러던 그녀는 21세기에 길이남을 명곡을 부르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의 당당함’을 깨우치고 굳건한 얼음성을 세운다.

당당함 쩐다

근데 이러한 캐릭터 서사가 엘사가 처음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슈퍼맨부터 시작된 모든 슈퍼히어로들이 공통적으로 보유하는 서사 구조이다. 그런데 유독 ‘다름에 대한 핍박을 극복’하는 서사에 집착하는 시리즈가 하나 있었으니....

울버린마냥 끊임없이 재생하는 시리즈의 생명력에 치얼스

바로 엑스맨. 그리고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지겹도록 언급되는 것이 이 시리즈가 가진 LGBT 알레고리이다. 극 중 대놓고 Mutant and Proud라는 슬로건을 주창할 정도로 이들은 슈퍼히어로의 소수자 아이덴티티를 전면에 내세웠고 이러한 테마는 겨울왕국에서도 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러한 주제가 앞서 언급한 ‘여성 캐릭터 둘의 상호관계만으로 완결되는 서사’와 맞물려 거대한 빅뱅을 일으켰다.

https://www.pinknews.co.uk/2019/07/13/frozen-elsa-let-it-go-lesbian-song-miss-disney/

엘사가 레즈비언이라는 팬 이론이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겨울왕국 2의 트레일러가 공개되자 이러한 주장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남긴 겨울왕국의 속편이 드디어 개봉했다

https://www.imdb.com/title/tt4520988/

전작이 취했던 방향은 한층 더 강해져,

크리스토프-안나-엘사로 연결되는 집착의 끈은 그대로인 데다가(당최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왜 연인인 것인지 알 수가 없음이다)

엘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안나의 여정이 더욱 더 부각되며

엘사의 뿌리를 찾는다는 여정은 모계 혈통에 대한 발견으로 이어지고

엘사가 가진 소수성은 핍박받는 소수 민족으로 확대된다.

엘사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죄(...)로 에렌델의 침략을 받아 숲에 갇힌 셈이니 헤게모니 상 그들의 위치를 보아 소수 민족으로 봐야 할 것

그래서 이야기의 완성도와는 별도로 겨울왕국 2가 전편이 확장한 지평을 그대로 이어갔느냐고 묻는다면 명확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이너리티의 게토화, 정통 이성애 커플로의 승계

모든 여정을 마치고 자신이 반쯤 섞인 소수 민족을 당당하게 해방한 엘사/안나 자매(그렇다,   혼혈이라는 점을 기억하자)는 뜬금없이 두 부족이 공존하는 통합 국가가 아니라, 소수 민족은 엘사와 함께 살고 에렌델은 안나/크리스토프 커플이 통치하는 구조가 된다.

결국, 백인이 다수인 에렌델은 이성애 커플이 통치하고, 능력을 가진 싱글 여성(레즈비언인지는 뭐 논외로 치더라도)은 인디오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소수 민족들에게 돌아가서 숲 속에서 사는 것이 해피엔딩이라는 것이 겨울왕국 2의 결론인 것이다.

그렇게, 전편에서 외롭게 얼음성을 세운 엘사를 안나의 도움으로 벽장 밖으로 끌어낸 디즈니는, 후속작에서 다시 그녀를 산골짜기로 보내버렸다....

올라프가 계속 읊어대는 ‘따뜻한 포옹’, 실로 얼마나 의미 없는 외침인가!


P.S. 겨울왕국 짤들을 잔뜩 찾아다 무단으로 썼는데... 디즈니에서 고소 들어오면 어떡하지.... 상업적으로 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단 사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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