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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Nov 26. 2019

겁도 없이 DELE C1 도전.

더 이상 내 인생에 시험은 만들지 않으리라

재앙은 6월에 시작되었다.

대학 시절에 DELE B2는 땄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야 간신히 땄고, 그마저도 2013년이니 엄청 오래 전인 셈이다. 어쨌든 졸업 후에 계속 회사에서 스페인어는 꾸준히 써 왔는데 문제의 2019년 6월. 지금 내 스페인어 상태가 대강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쓸데없이 들고 말았다.


사실 6월에 7월 시험을 신청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래도 기왕 보는 시험 나름 준비해서 깔끔하게 한 번에 붙어야 한다’는 동양인 마인드가 발동되어 11월 시험을 신청했다.

영원히 고통받는 전무송씨.....

그래서 내가 공부를 제대로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고 내가 하고 싶은 여가 활동을 죄다 하면서 시험 준비까지 하는 것은 좋게 말해 어려운 일이었고 솔직하게는 하기 싫은 이었다.


시험 준비를 하겠답시고 산 에델사(Edelsa) 책은 시험이 다 끝난 지금도 절반도 풀리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고, 작문을 연습하겠다고 야심 차게 시작한 영화 스페인어 리뷰는 고작 두 편을 쓴 것이 전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일단 스페인에 살기 때문에 스페인어에 끊임없이 둘러싼 생활환경이 주어졌다는 것과, 업무 상 계속해서 스페인어로 된 텍스트를 제한된 시간 내에 읽고 요지를 파악하고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반복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자연적으로 학습한 실력으로 11월 DELE C1 시험을 맞이했다.

시험을 열흘 정도 앞두고 구두 평가(Examen Oral)와 서면 평가(Examen Escrito) 날짜가 메일로 통보가 왔다. 다행인지 모르게 다른 날로 잡혔고, 말하기 시험을 먼저 보게 되었다.


말하기 시험: 화기애애한 스몰토크, 그러나 그뿐

DELE C1의 말하기 시험은 크게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면접관을 만나기 전 약 20분 동안의 시간 동안 두 개 주제 중 하나를 선택해서 A4용지 한 페이지 정도의 지문을 읽고 면접 중에 활용할 메모를 작성한 뒤, 그 메모만 들고 들어가서.....

약 3분에서 3분 30초 분량으로 해당 지문의 요지와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요약 발표

해당 지문에 대한 자유 토론을 면접관과 진행

그리고 난 뒤 면접관이 제시하는 두 주제 중 하나를 선택, 네 가지 선택지 중 질문에 포함된 두 개의 조건을 가장 잘 충족하는 옵션을 선택하여 면접관에게 이 옵션이 제일 합당한 이유를 설득

하는 세 종류의 과제를 진행해야 했다.


결국 대체적으로 장문의 텍스트를 이해하고 그에 기반해서 논리 정연한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를 보는 셈. 시험 분위기 자체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순간순간 말문이 막히는 부분은 있었지만 아예 문장 구성을 하지 못한 것은 없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시험이 진행될수록 면접관이 내 뒤에 앉아있는 평가관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지? 틀렸나?’라고 생각을 하다 보니 다음 이야기를 제대로 생각지 못했던 것 같고.

그리고 가장 후회되는 점은, 말을 하면서 소위 고급 표현이라고 하는 접속법과 접속법을 활용한 가정법 구문, 그리고 이런저런 관용구들을 제대로 끼워 넣지 못했던 것이었다. 기분 좋게 이야기는 했지만 냉정하게 평가를 하자면 높은 점수는 받지 못할  같다는 생각.


쓰기 시험: 읽기 시험은 쉬웠다. 역시 이것도 그뿐

그리고 그 주 토요일, 약 네 시간에 걸친 서면 평가를 치르러 시험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침 8시 반까지 가야 하는 시험장이 집에서 걸어서 5분이었던 것.


서면 평가는 독해, 청해, 그리고 쓰기의 세 섹션으로 되어 있고, 그 순서대로 치르며 쓰기 전에 약 30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독해는 총 다섯 개의 섹션이 있다

각 섹션마다 A4용지 한 페이지 정도의 지문이 주어진다. 순서대로 나오는 문제는 아래의 40개이다.

지문 내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삼지선다 문제 6개

지문 내 빈칸 6개에 논리상 맞는 문장을 끼워넣기

지문에서 유추되는 사실을 선택하는 문제 6개

6개의 작은 텍스트 덩어리들을 들어맞는 설명에 배치시키는 문제 8개

큰 지문 내 빈칸 14개에 들어맞는 어법적 구성요소를 끼워넣기

중간의  번째 지문들이 영화 관련 서적들의 소개문이었던 덕에 매우 편안한 마음으로   있었다.


이 중 내가 가장 어려웠던 것은 두 번째와 다섯 번째. 다섯 번째야 원체 스페인어가 전치사나 접속사, 그리고 접속법의 활용법이 중구난방이라서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어느 정도 감으로 때려 맞추면서 내가 주워들은 스페인어가 내 무의식에 올바르게 바로잡혀 있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두 번째 문항. 수능 외국어 영역처럼 대명사나 접속사 등을 참조하는 ‘스킬’로 해결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항상 느끼지만 스페인어 지문은 뭔가 기승전결이 갖춰진 언덕이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평야를 보는  같다.

어떻게 보면 두 번째 문항을 제대로 풀어내는 순간 스페인어 사용자의 멘털리티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러고 나서 쉴 틈 없이 맞닥트리는 듣기 평가. 이제부터는 멘털 싸움....인데 아침에 화장실을 다녀올 것을..... 물도 안 마셨는데 이게 웬 봉변인가.

듣기는 총 네 개의 섹션이 있다

모든 지문을 두 번 들려준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정작 듣다 보면 기나긴 스페인어 문장들 속에서 뇌가 불타 없어질 것이다.


솔직히 읽기는 세 개의 시험모델을 풀어서 유형을 완벽히 알고 있었지만, 듣기는 오.로.지. 한 개의 시험모델만을 풀었는데 하필 토익이나 다른 시험에서는 보지 못한 첫 번째 섹션을 보는 순간 혼이 가출해버렸다. 네 섹션은 총 30문항으로 되어 있다.

약 5분? 정도의 콘퍼런스 연설문을 들으며 해당 연설문의 요약에 해당하는 6개 문장을 완성시키는 문제

네 개의 대화를 들으며 한 대화 당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사실에 대한 두 개의 질문을 대답하는 문제 8개

인터뷰 내용 한 지문을 들으며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을 물어보는 문제 6개

짤막한 대화를 들으며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을 물어보는 문제 10개

읽기도 그렇고 듣기도 그렇지만 델레는 질문들이 지문 내에서 등장하는 순서대로 배치되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한 시험이다.

쓰기 시험은 총 두 개의 섹션이 있다

또다시 기나긴 콘퍼런스 연설문을 들으며 그 내용을 요약하고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을 220-250 단어로 쓰기

1) 그래프로 된 자료를 분석하거나 2)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글을 180-200 단어로 쓰기

첫 번째 연설문 또한 두 번을 들려주며, 답안지는 첫 번째 섹션을 위해 세 페이지, 두 번째 섹션을 위해 두 페이지를 주며 연습지를 두 장 준다.


연습지에 열심히 쓴 글을 꼼꼼하게 답안지에 옮겨적고, 단어를 찬찬히 세어본 뒤 두 번째 문항을 답변하고 (역시 써 버릇한 글이 업무용 이메일, 영화 리뷰인지라 자료 분석하는 글을 선택) 다시 첫 번째 문항의 답변의 단어 수를 세 보는데.

한 손으로 한 손가락당 10 단어, 50 단어마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횟수를 잘못 세어 250 단어인 줄 알았던 지문이 사실은 200 단어였다.....

결국 20 단어를 위해 결론을 재차 반복하며 더욱더 강력히 나의 의견을 어필하고 시험지를 제출...


그냥 좋은 경험이었으니,
더 이상 시험은 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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