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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Feb 12. 2020

한국에서 다시 살아가야 하다.

승객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출발 준비가 완료되었으나 일부 승객이 도착하지 않아 대기 중입니다.

출발 예정 시간이 벌써 15분이나 지났지만, 비행기는 이동할 생각을 않고 있다. 나는 14시간 남짓의 시간을 이 좁은 공간에 갇혀 사육당하며 보낼 시간을 하며 잠자코 앉아있는다. 5분, 10분, 15분이 지나 출발 예정 시간을 30분 정도 넘긴 뒤, 기내 방송이 다시 나온다. "손님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출발 준비가 완료되어 곧 이륙하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들리는 가운데, 내 앞에 앉은 승객이 불쑥 혼잣말을 허공에 던진다.

이렇게나 사람들을 기다리게 했으면 직접 와서 사죄해야 되는 거 아냐?

마드리드 공항을 채 떠나지도 않은 그 순간, 나는 마치 한국에 도착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꼰대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재외공관 행정원 같은 걸로 해외 나가 사는 게 추천할 만한 건 아니더라.

약 3년 동안의 스페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내 앞에서 친구는 이야기했다. 마치 각고의 노력 끝에 통과한 시험으로 공무원이 되었으니 너의 지난 3년 동안의 생활이 어땠는지 굳이 내가 배려할 이유도 없고, 심지어 너의 지난 3년의 해외 생활을 평가할 자격이 있다는 듯이.

그 순간 깨달은 것은, 견딤의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사실.

어쨌든,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모든 것에 대해 모두가 항상 분노해 있는 곳에.

끊임없는 재단과 판단, 평가에 맞추면서도 내가 갖고 있던 본질은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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