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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Mar 18. 2020

비플러스(B+)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충분히 노력했다면, 그것으로도 괜찮다는 생각.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간 대학교의 첫 학기. 나는 8개의 과목을 들었고 공교롭게도 그중 7개의 과목에서 비플러스(B+) 학점을 받아 들었다. 남은 한 과목의 학점은 물론 씨 플러스(C+). '오, 그래도 나쁘지 않은데?'라는 생각으로 나는 점심을 먹으며 이런 결과를 받았노라 모친께 고하였고, 어머니는 냅다 이런 반응을 보이셨다.

항상 그딴 식으로 어중간하게 살더라니.

A부터 F까지 주어지는 학점에서 B라면 꽤나 높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건만 그녀의 기준은 높고도 엄중했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생각이 뭉툭하게 튀어나오지 않도록 밥 한술을 목구멍에 급히 쑤셔 넣었다.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학업의 성과가 지표로 주어지기 시작한 중학교 3년 동안 나는 우직하게도 모든 중간/기말고사의 평균을 85점으로만 기록했다. 누가 딱히 그 점수를 받으라고 했던 것도 아닌데 사흘 동안 진행되는 시험의 시작이 좋을라치면 여지없이 나중 시험으로 평균 85점을 저격수처럼 맞추었더랬다. 처음에는 별 말이 없던 부모님도 계속 똑같은 점수만을 받으니 슬슬 이골이 나기 시작했는지 시험 준비를 좀 더 신경 써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씀을 하셨지만, 15년 뒤 모친이 인정하셨듯 나는 '말한다고 듣는 아이'는 아니었다.

벼락치기와 4당 5 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생

'4당 5 락'이라는 말이 있었다. 매일 네 시간을 자면 대학에 붙고 다섯 시간을 자면 대학에 떨어진다는 거창한 말이었는데, 나에게는 무의미한 말이었다. 12시가 되면 반드시 잠을 자야 했고, 6시가 되면 일어나서 학교에 갔었으니까. 벼락치기도 내게는 없는 개념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유난스럽게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할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매일매일 야간 자율학습을 강제로 했던 것이 습관 유지에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는 것이 아니면, 모르는 것.

어떻게 보면 '시험 준비'라는 건 없었다. 수업 중 정리해서 작성한 메모들을 다시 보며 노트에 재구성하는 것 정도였을까. 어차피 벼락치기로 머릿속에 구겨 넣었던 지식으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험지를 받아서 쭉 풀고 난 뒤에도 풀지 못한 채 남아있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냥 내가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력해서도 안 되는 것이 존재한다는 개념이 익숙했던 것 같다. 

100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120-130을 준비해야 한다고들 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 과정의 끝에서 85의 결과를 받아들었다고 해서 크게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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