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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Sep 18. 2017

디트로이트.

영화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영화에서 구성요소마다 시간을 들이는 정도가 약간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이야기들은 배경 설명을 간략하게 하고, 그 뒤에 그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그 사건 내의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두 시간 반에 달하는 러닝타임의 절반은 '어쩌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는가'를 설명하는 데 할애된다. 어째서 이들이 이런 소요상태를 일으키게 되었고, 그 소요상태의 전개가 어떤 양상을 띠었는지를 설명하고, 그 등장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


다만 그럴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한 회의감도 드는 것이, 전반부 주인공들의 이야기 중 래리와 프레드의 배경은 좀 과잉설명된 느낌도 있었기 때문에. 되려 마무리 부분에서 더 큰 절망과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존 보예가의 디스뮥스 캐릭터였는데 두 인물에 너무 시간을 쓴 것 같다.


그리고 문제의 알지어 호텔 사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상당히 간단한 전개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건 러닝타임 내내 흔들리고, 가려진 채 끊임없이 시야를 방해받는 카메라를 통해 사건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비논리적인 공포 속에서 펼쳐지는 백인들만의 게임을 보고 있자면 숨이 막힐 지경이고.


무엇보다 윌 폴터의 연기가 너무나 인상적이다. 아직 청소년기에 머물러 있는 듯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인물의 인종차별주의적인 성격과 맞닥트려 묘하게 어우러진다. 순수하게 자신들이 정당하고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그 영화가 끝나고 나서까지도 변화라는 것이 없는.


그래서 더 무서웠던 것 같다. 지금에도 흑인을 비롯한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끊임없는 탄압이 공개적으로든 우회적으로든 산재되어 있다는 사실이 계속 상기되었기 때문에. 나도 여기서 소수자로 살아가고 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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