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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Mar 24. 2020

인비저블 맨(The Invisible Man,2020)

차폐로 인해 더욱 강렬해지는 감각이 만드는 공포

https://www.imdb.com/title/tt1051906/

영화가 시작되면 여러 겹의 보안을 통과, 절벽 위 호화 저택에서 도망치는 주인공 세실리아를 만난다. 그 이후 관객은 두 시간 동안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공포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 함과 동시에 그녀를 믿어주지 않는 사회로부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을 따라간다.

의도적으로 차단된 정보로 인해 생겨나는 불안감

영화는 과거 세실리아와 애드리안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플래시백'이 전혀 없다. 심지어 첫 시퀀스에서 뒤늦게 깨어나 세실리아를 쫓아오는 애드리안의 모습 역시 스치듯 지나가서 우리는 전적으로 세실리아의 주장에 의존해 이 상황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영화 속 모두가 진위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과정에서 결국 자신을 의심하는 상황에까지 놓이는 세실리아와 관객은 철저하게 하나가 되어버리는 셈.

카메라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공백들이 만들어내는 공포

러닝타임 내내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인물을 멀리서 잡아서 '외부인의 시선'을 흉내 내거나 존재하는 인물을 구석이나 심지어 화면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빈 공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계속적으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공포를 자아낸다. 영화는 계속 내러티브와 촬영/연출에서 끊임없이 공백을 만들어냄으로써 관객들을 무지의 공포로 몰고 가는데 이것이 꽤나 효과적이다.

영화의 빈틈을 메꾸는 엘리자베스 모스의 연기 차력쇼

120분 러닝타임의 대부분은 세실리아를 향한 물리적/사회적 가스 라이팅으로 채워져 있다. 그만큼 영화 자체가 관객의 체력을 끝까지 소진시키기 위해 구성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되려 영화가 세실리아에서 조금이라도 시선을 돌리는 순간 아쉬운 부분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투명인간'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다소 투박하며, 세실리아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은 다소 편의에 의해 소비된다는 인식을 버릴 수 없다. 특히 주인공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과정을 보자면 실소가 나올 지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화면을 가득 채운 엘리자베스 모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런 의문은 하얗게 잊은 채 순식간에 몰입하게 되는데 이건 아무래도 배우가 그동안 쌓아온 캐릭터가 기여하는 부분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 끊임없이 억압받고 불안정한 육체적/심리적 상태에 놓이더라도 우직하게 자신이 뜻한 바를 밀고 나가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체화시켜온 배우가 쌓아온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동일한 전제에서 주인공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흥미로운 작품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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