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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Apr 09. 2020

동방박사가 오신 날, 마요르카로.

대중교통으로 오만 곳을 다니기.

2020년의 동방박사 오신 날은 월요일이었다(1월 6일).

스페인에 살면서 군도 두 곳 중 한 곳은 가봐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에 마요르카행 티켓을 끊었다. 비수기인 덕분에 고작 이 주 만을 남기고 급하게 산 티켓임에도 80유로 언저리에 왕복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하나의 알림판, 네 개의 언어

마요르카는 독일 사람들이 휴양을 오다 못해 여름 별장을 두고 지내는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시내에는 독일인을 대상으로 하는 부동산 사무소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중앙 광장 근처에서 발견한 카페는 (스페인어를 못하는) 독일인 주인이 빵을 구우며 내 주문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공항에서부터 맞닥트리게 되는 황당한 알림판.

위부터 차례로 마요르카에서 쓰이는 언어인  마요르낀, 영어, 독일어, 그리고 스페인어.
지중해 한복판에서 느낀 대서양 건너 멕시코

팔마(Palma) 도심은 소소하게 골목을 구경하는 재미는 있지만 거창하게 대단한 것들을 볼 생각이라면 그다지 볼 것이 없는 곳이다. 요트가 즐비한 항구이기 때문에 바닷가로 나가서 해변을 걷거나 하는 것도 힘들다. 스페인 반도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는데, 한눈에 띌 정도로 크게 만들어진 전광판들이며 여기저기 잡다하게 들어선 요란한 노점상들이 묘하게 멕시코를 연상시키기도.

스페인 전역에서는 동방박사 오신 날 전야에 행진(cabalgata)을 한다. 화려한 옷을 입은 퍼레이드카가 각 지역의 도심을 지나며 행렬을 보러 온 꼬마들에게 사탕을 던져주는데 이게 나름 단단한 알사탕이라 맞으면 아프기도 하다. 팔마에서는 시내 도심 대로인 파세익 델 보른(Passeig del Born)에서 한다고 하길래,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난데없이 트랙터(!)로 견인되며 등장한 퍼레이드 행렬에 충격을 받았다.

발데모사(Valldemossa)와 소예르 해변(Port de Sóller)

마요르카에 오는 경우 대부분 섬의 북부에 있는 이곳저곳을 가기 마련인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다들 발데모사와 소예르 해변을 가는 것 같아 두 곳을 가기로 결정했다. 이동을 감안하여 숙소는 버스터미널과 트램 전철역이 위치한 Plaça d'Espanya 근처로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트램은 정비 중이어서 타질 못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유는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에 차를 빌리지 않았기 때문

팔마 버스정류장에서 발데모사로 가는 버스는 210번, 소예르 해변으로 가는 버스는 210번/211번이 있었다. 당연히 나는 발데모사를 간 뒤에 거기서 바로 소예르 해변으로 가는 210번을 마저 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정오 즈음에는 소예르 해변으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발데모사에서 역행 210번을 타고 팔마로 다시 돌아가서 211번을 타고 소예르 해변으로 가긴 했지만, 하루에 두 곳을 다 볼 수는 있었다.

쇼핑/조르쥬 상드 박물관이 있는 발데모사(Valldemossa)였지만, 박물관은 닫혀 있었다..
소예르 해변(Port de Sóller)으로 가는 버스는 소예르 마을도 거쳐가므로, 정류장을 헷갈리지 않게 조심할 것
안익태 선생 유가: 동방박사의 선물이 되다

팔마 도심에서 4번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나오는 마을에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의 유가가 있다. 뭐 친일 행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마요르카까지 온 마당에 한번 방문하기로 했다. 구글 지도에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기에, 블로그를 뒤적여서 발견한 주소는 Carrer de Josep Costa i Ferrer 4번지.

동방박사 오신 날 당일 오전에 가게 되었는데, 사실 말이 안익태 선생 유가지, 개인 사가를 한국 정부가 국유화한 안익태 선생의 사가를 막내 따님이 관리하면서 살고 있는 상황이라 휴일에 가게 된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거창하게 표시가 되어있지는 않았고, 대문 벨 옆에 조그마하게 현판이 걸려있었다.

'휴일에 방문해서 귀찮게 해 드려 죄송하다'라고 하니 의외의 답을 해주셔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점심 약속이 있어 나갈 참이었는데 우연히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동방박사가 내게 한국에서 온 선물을 주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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