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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Jul 15. 2020

스페인의 많은 사건(caso)들

곪을 대로 곪은 정계에 눈을 돌려버리는 국민들

현재 스페인의 국왕은 펠리페 6세이다. 프랑코 장군의 독재 정권이 무너진 1975년 이후 계속 왕위에 있던 후안 카를로스 1세가 2014년 6월 왕위를 아들에게 양위하였는데, 최근 선왕의 부정부패를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어 조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 2008년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가 '선물'한 1억 유로를 둘러싼 의혹인데, 메디나와 메카를 잇는 고속철 건설 사업을 스페인이 수주하는 데 후안 카를로스 선왕이 중재를 한 대가로,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를 통해 우회적으로 받은 돈이라는 주장이다. 고속철 사업의 규모가 63억 유로라고 하니, 그중에 1억 유로를 커미션으로 준다고 해도 그렇게 터무니없는 금액은 아닌 것.

스페인 총리는 공식 발표에서 의혹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공식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1억 유로는 2012년 스위스 은행의 자금 세탁 관련 규제가 강화되기 전까지 후안 카를로스 선왕이 사용하였고, 이후 선왕의 옛 애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스페인 친구들과 정치 이야기를 하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상당하다고 느낀다. 의원내각제의 역효과로 '어차피 정치인들끼리 연합(pacto)을 만들어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 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스페인의 거대 정당 두 곳의 비리가 모두 만만찮은 스케일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저 뉴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예상한 답변이 돌아온다.

다 똑같은 놈들이야(Son mismos).

스페인 뉴스에는 수많은 caso와 opearación들이 등장한다. 비리 사건들에 언론사들이 닉네임을 관습적으로 붙이는 탓인데, 당을 초월해서 벌어지는 여러 비리들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여러 사건들이 있지만 지금 가장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고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사건 두 개는 바로 중도 우파 PP당의 'Caso Gürtel'과 현재 집권당인 중도 좌파 PSEO당의 'Caso ERE'.

전자는 공공 입찰에서 체계적으로 쌓아온 비리가 적발된 것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PP당이 실각하고 지금의 PSOE 정부가 들어섰다. 반대로 'Caso ERE'는 근 40년 동안 안달루시아 정부를 지배해 온 PSOE당이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에서 오랫동안 저지른 비리. 공교롭게도 PP당의 전임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의 실각 이후 곧바로 공개되어 PSOE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었다.

장군과 멍군을 주고받으며 권력을 연명하는 두 정당

항상 이런 식이다. PP당에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 비슷한 성격의 비리가 PSOE를 대상으로 등장하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기에 바쁘다. 약 2-3년 전 가량 마드리드 전 주지사였던 크리스티나 시푸엔테스(Cristina Cifuentes)의 박사 학위 논문 표절 논란이 일자 몇 주 뒤 PSOE의 당시 당 대표였던 현 총리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의 학위 논문 표절 논란이 곧바로 등장하는 걸 보고 있자면 외국인인 나도 질릴 지경이었다.

두 정당을 비판하며 등장한 시민당(Ciudadanos)이 반짝 인기를 끄는가 싶었지만 결국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순한 흠집 내기와 비난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렇게 되니 계속되는 애들 싸움에 사람들이 질려버리고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해결이 되기는 할까?

스쳐 지나가기에는 따스한 태양과 시원한 바다가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 스페인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기에 바빠 실질적인 해결책은 요원하기만 하다. 중앙 정부는 서로에게 비리 의혹을 던져대느라 정신이 없고, 관광 수입이 GDP의 12%를 차지하기에 서둘러 허겁지겁 개방한 지방 곳곳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지방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다. 여기에 국왕을 둘러싼 비리 의혹과 카탈루냐 지방 의회 의장을 겨냥한 해킹을 두고 들고일어난 지방 정당들까지. 스페인에 적재된 고름들은 손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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