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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Oct 04. 2020

두 번의 퇴사, 한 번의 해외 근무

2020년 1월 말 귀국했을 때만 해도 한 분기 정도 푹 쉬고 나서 다음 직장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2월 중에는 퇴사를 기념하며 (겁도 없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도 여행해보자고 생각했었다. 이때만 해도 전 세계가 역병으로 인해 마비되어, 상상할 수 없는 경제난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두 번의 이직 모두 퇴사를 먼저 한 뒤에 다음 일자리를 구했다. 첫 직장은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의 대졸 신입사원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연봉을 받으며, 스트레스를 돈 뿌리는 재미로 메꾸며 사는 삶이었다. 애초에 허영이 큰 사람인 내가 대학생의 기준으로 아무리 써도 동나지 않는 계좌를 만나며 성미와도 맞지 않고 바라지 않았던 분야에서 일하며 얻는 스트레스를 끊임없이 돈을 쓰며 메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직장이 내게 준 것이 있다면 역시 '연봉 협상력'이었다. 이직을 하면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회사의 이름은 나도 모르게 여유롭게 협상에 임할 수 있는 자세를 주었고, 최소한 면접까지는 볼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첫 이직은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분야와 근무지만을 바라보고 과감하게 밀고 나갔던 선택이었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고,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으며 세 번째 직장과 매끄럽게 이어지기까지 한 경력이었지만,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탈조선만 맹목적으로 생각하고 앞뒤 가리지 않고 도달한 곳에는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었고 예상보다 완벽하지 않다는 실망감은 스멀스멀 뇌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 직장을 구한 입장에서 안일하고 오만하게 내린 평가일 수도 있겠지만, 두 번째 직장은 특별한 단기 경험을 아직 할 수 있었던 젊은 나이에 적당하게 내린 이직과 퇴사였다. 조금 더 냉정하게 이야기해보자면, 나는 두 번째로 얻은 해외에서의 직장을 '과정'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가입했던 사보험과 적금을 그대로 유지하고 끊임없이 스페인에서의 삶과 한국으로의 복귀를 비교하며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있었다.

첫 직장과 두 번째 직장의 경력 기간이 비슷하게 될 즈음, 한국으로 돌아가서 마지막으로 원하는 목표를 향해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이가 들고 난 뒤에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거니와 두 개의 경력이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졌기에 비슷한 기간의 경력 두 개를 가지고 있을 때 이직이 용이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

이번에는 좀 느긋하게 이직을 해보자고 생각했던 마음은 이내 조급해졌으나 판데믹으로 인해 세 번째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길어져 버렸다. 무직 기간이 길어졌지만 도리어 원했던 회사의 구인 시점까지 내가 강제로 기다릴 수 있는 환경이 되었고 'Third time's a charm'이라는 말처럼 신기하게도 원했던 방향으로 이직할 수 있게 되었다.

3,4년 정도가 지나고 난 뒤에 또 나름의 불만을 갖고 이직을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지난 두 번의 입사보다 약간은 다른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두 번의 경력을 거쳐 이제야 마지막 지점에 도달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정착하고자 하는 마음이 오롯이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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