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특정 직종에 종사하거나,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형화된 인간상이 있다. 모 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사람, 혹은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공무원이라고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떠한 사람의 성질은 막연하게 모두에게 존재하고, 정도는 다르더라도 모두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무형의 어떠한 형태로 머릿속에 형성되기 마련이다.
과연, 그렇다면 그런 동일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하나의 회사, 혹은 업계를 구성하게 된 것일까? 우리나라의 공채 시스템이 그렇게 정밀하게 작동한다고는 믿기 어렵고, 아마도 선발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씨앗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거대한 하부구조 속에 본인을 적응시키는 과정에서 그 씨앗을 틔워서 키우는 과정에서 그런 사람이 되어간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요인이 바로 회사의 의사결정 체계가 얼마나 잘 확립되었고, 그 체계 안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 회사가 얼마나 명확하고 효율적으로 빠르게 교육을 시킬 수 있는지의 역량이다. 일을 시키려면 어쨌든 가르쳐야 하기에, 회사에서 새로운 인력을 선발하였을 때 가장 큰 비중을 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한정된 상황과 회사의 주된 목적(빠른 수익 창출) 탓에 2주, 혹은 한 달 남짓한 기간 만을 두기 마련이다. 심지어 공공부문의 경우는 냅다 자리에 앉혀놓고 한 두 장 짜리 매뉴얼만을 쥐어주기도 하고. 여기에서 흔히 모든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이 가지는, '체계 없는 회사'에 대한 불만이 발생한다. 백지상태에서 냅다 일을 시켜놓고는 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냐며 윽박지르는 상황.
돌이켜보면 내 첫 회사의 신입사원 교육은 상당히 단도직입적이었다. 팀장이 아닌 실무자들이 돌아가며 들어와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바로 공유해 주고, 전체 단위에서 필요한 업무용 툴(SAP 등)에 대한 교육이 병행되었기 때문이다. 몇 달 뒤 진행되었던 그룹사 교육이 그룹 비전에 대한 발표, 리더십 강의 등의 다소 막연하고 거시적인 차원의 이야기와 액티비티 위주의 활동이었던 것과는 상당히 대비되었다. 그 이후 약 세 달에 걸쳐서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히 하드 트레이닝을 거치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협상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얼마나 역할을 했는가 와는 무관하게.
지금의 회사는 자유분방하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명료한 의사결정범위가 있지만 실상 그 범위를 초월하려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하나의 회사 안에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생경한 경험이었다.
다만, 단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첫 회사와는 달리, 지금의 회사는 거대한 방향 안에서 다양한 목적을 수행해야 하는 회사였다. 따라서 다양한 목적에 따라 작동하는 인원들이 제각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게 되어 수직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고,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지향하는 듯 하지만 실상은 수평적 논의를 방패 삼아 서로를 방관하기도 하는 회사.
무엇보다도, 지금의 회사는 다른 인적 구조를 띄고 있었다. 첫 회사는 흔히 말하는 대졸 공채로 채용된 동질적 배경의 인력들로 대거 구성되어 있는 회사였고, 그렇기에 사람을 정형화시키기에 더 용이한 조직이었다. 반면 지금의 회사는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여러 경로를 통해 채용된 사람들로 구성된 회사였기에 회사에서 필요한 조직을 만드는 데 더 어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렇다면 이 회사는 이런 다양한 사람들을 회사에 필요한 인재로 정형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해 왔는지, 그 노력에 앞서 어떠한 사람이 이 회사에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져 왔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