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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Nov 08. 2020

"내가 뜻하는 바가 뭔지 알지?"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최 본인이 원하는 바를 침착하게 설명한 적이 없었다. 팀을 어떠한 방향으로 운영하겠다는 큰 그림. 우린 그걸 들은 적이 없었다. 직원들을 앉혀놓고 지금까지 어떤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었는지 들은 뒤,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는 시간 따위는 없었다.

아, 사실 후자는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간헐적으로 그가 쏟아내는 비전의 파편들을 듣곤 했다. 그의 의식의 흐름이 실수로 스위치를 누르면 튀어나온 '무엇을 하고 싶다'는 소소한 관념들. 내가 아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이 사업에 적합하다. 내가 볼 때는 이런저런 것들을 가져오면 좋겠다. 그런 말들은 정말 많았다.

문제는 그 안에 너무나 많은 그가 있었다는 거다.

원하는 건 많고, 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 원하는 많은 것들을 하기는 해야겠으니 지시사항은 많아진다. 그리고 한 사람이 그 지시사항을 따라가는 데는 필연적으로 물리적인 한계가 생기고 앞서 말했듯 그가 원하는 걸 이뤄낼 수 있는 기회는 제한되어 있을 수밖에 없으니 실무자는 서서히 휘둘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NO”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실무자가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말을 해도 그는 “일단 해보자”는 말만을 반복했다. 벽에다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서 최소한 우선순위를 정해서 시도해보자고 설득을 한 들 먹힐 리가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을 그는 하고 싶었으니까.

사실 우선순위는 있었고, 꽤나 명확했다.

그는 철저하게 “밖으로 성과를 내보이는 일”을 하고, 그 결과물을 널리 홍보하고 싶어 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4년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다급증이 생길 법도 했을 것 같다. 당연히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소한 사업들엔 1) 관심이 없었고, 팀 관리에 들어가는 루틴화 된 행정 업무는 2) 그 어떠한 행정적인 노력과 일/노력이 들지 않는 일로 간주되어버렸다.

사실 나에게는 축복이기도 했는데, 그가 사무실에 있는 약 4시간(혹시 몰라 말해두자면, 그분도 우리처럼 주 40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 분이셨고, 나머지 시간 동안 그의 행방은 그 어떤 직원도 알지 못했다) 동안의 주된 업무 협의는 그들이 관심 있는 분야의 담당자와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의 무관심 속에서 차라리 내 재량껏 일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게 축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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