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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Nov 28. 2020

부임과 동시에 시작된 1년 동안의 화전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들로만 채워나가다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년 한 해의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는 시기가 시작되었고, 모든 직원이 리더와 마주 앉아 각기 다른 예산 항목들을 다양한 사업들에 끼워 넣는 작업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사업 구상은 끝났고 나는 당연히 그 이후의 수정 작업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나의 오산이었다.


사업 계획에 따른 예산이 집행되고 실제 사업을 추진하는 중에도 일주일 단위로 프로그램의 핵심 사안이 바뀌는 일도 빈번했고, 그 시기와 세부 예산 사용처가 바뀌는 일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당연히 당초 계획과 최종 예산 사용 내역은 완전히 다른 그림일 수밖에 없었고, 한쪽의 예산은 절반 이상이 남고 다른 쪽의 예산은 모자라는 가운데 예산 간의 교류도 불가능해 추가 예산을 요청하는 터무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사업들만을 갈아엎을 줄로만 알았는데, 팀 전체를 다 갈아엎으며 끊임없이 그 위를 불태워서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대외적으로는 잘 포장된 것이 다행이라 해야 하나. 모르겠다.

이 팀은 그동안 모든 걸 잘못해 오고 있었다

부임한 이후, 전 팀원이 모인 회의에서 그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앞선 모든 것들을 다 엎어버리고 자신의 취향과 입맛대로 모든 것을 다시 쌓아 올릴 것임을 선포한 셈이었다.


그는 매사에 확신에 차 있었다. 다른 팀에서 이런저런 큼지막한 일들을 해왔고, 오랜 경력이 있으니 내가 정답이라는 그런 태도였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겠구나.라고 막연히 생각했고,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기는 했었다. 추진력이라던가, 갑자기 이런저런 연락처를 전달해온다거나, 그런 것들.


물론 여전히 두서없고,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로드를 무시하는 업무지시들이었고 심지어 본인도 그 지시들을 추적하질 못해 혼돈스러웠지만, 그래도 뭔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이 사실 지난 팀에서 했던 것들의 완벽한 리바이벌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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