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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Feb 27. 2021

나는 곧 서른다섯인데, 너는 여전히 서른한 살이다.

너무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 언제 처음 만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너와 내가 그랬고, 유치원 즈음 만난 우리는 부모님의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월세와 전세를 지나며 한 동네에서 근 30년을 살았다.

같은 중고등학교를 다닌 적은 없었지만 내성적인 나와는 달리 먼저 쉽게 사람들에 손을 내미는 성격인 너 덕분에 우리는 꾸준히 연락을 하고 지냈고, 가끔씩 만나 맥주 한 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되었다. 많이 만나고, 모든 것을 공유한다고 해서 친구인 것은 아니라는 걸 알려준 것이 너였다. 1년 만에, 혹은 6개월 만에 만났어도 어제는 이런 일이 있었고, 너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 소소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친구.

집 근처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갑작스레 내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도 무덤덤하게 그런 일이 있었냐며 그동안 힘들었겠다고 말해줬던 너를 생각해보니, 이기적이지만서도 그때 털어놓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지하철 역 앞에서 만나 자전거는 웬 거냐고 묻는 나에게 너는 '좀 아파서 살을 좀 빼야 된다고'라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피가 좀 아프다'라고 했던 말을 나는 왜 농담이라고 생각했을까. 피가 아프다니. 당최 머릿속으로는 와 닿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벌어지는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리라고 이십 대의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만난 너는 독하디 독한 약이 불태워버린 머리를 모자로 덮고 있었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나, 나는 한국에 잠시 돌아갈 일이 있어 너에게 오래간만에 만나 외국 이야기나 들려주겠다 했고, 너는 그 시기엔 통원 치료를 하고 있을 듯 하니 보자고 약속했다.

며칠 지나, 잠을 청하려다가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울적해서 슬픈 것들을 되려 찾아보고, 따스한 노래를 들으면서 슬픔을 눈물로 토해내고 잠들었다. 그렇게 연말의 밤을 보낸 뒤, 일어나 핸드폰을 열어보니 떠 있는 수많은 카톡들. 그 사이를 헤집고 올라가 보니, 간 밤에 너는 5년 동안의 투병을 마치고 편히 쉬러 떠났다고 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태어나서 가까스로 나와 같은 학년을 보내며 졸업한 너는, 그렇게 한 해의 마무리를 앞두고 온전히 채워서 세상을 떠났다.

멀리 있어 직접 보내주지 못했던 너의 장례식에서 너희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더랬다. '마음대로 살고 있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있기만 하더라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라고. 그 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살아가고는 있지만, 문득문득 괜한 부채의식을 느끼면서, 네가 살지 못한 만큼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행복하게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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