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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Jun 11. 2020

#해시태그 너머의 세상

다양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고 연대해야 할 필요성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지역에 따라 양태는 다르지만, 다양한 목소리가 힘을 얻고 여러 입장을 이해하려는 접근이  세계에서 이어진다. 인종, 젠더/성적 지향, 경제/사회적 지위  다양한 요소들의 다양한 층위를 이야기하고 모두가 연대하고 이해하는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들이 기술 발전에 힘입어 즉각적인 반응을 얻는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인종에 기반한 차별에 대항하는 움직임을 보는 것을 넘어서 실질적인 집회에 참여함으로써 공감하며, 동시에  세대성장 과정에  영향을 끼친 작가가 트랜스젠더 여성의 인권을 무시함으로써 겪는 백래시를 실시간으로 바라본다.

반면,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갈수록 단순해지고 납작해지는 것만 같다.

가장 큰 이유는 동일한 양의 관심과 시간을 더 다양한 목소리가 나누어 가지는 과정에서 더 직관적이고 간결한 메시지가 큰 힘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회는 몇 개의 단어들과 이미지들로 압축된다. 예를 들어 흑인 인권에 대한 주장은 #BlackLivesMatter라는 단순한 해시태그와 인스타그램 캠페인으로 치환된다.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공권력에 의한 인종차별)과 크리스 쿠퍼가 겪은 협박(리버럴 백인이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인종차별 - 관련 논평),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에서 발생하는 구조화된 인종 차별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흑인과 백인의 대치 장면, 그리고 기존 체계와 그 체계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의 대결로 이미지화되어 나타난다.

데일리 쇼(Daily Show)를 진행하는 트레버 노아(Trevor Noah)의 18분짜리 독백 영상은 이런 맥락에서 흥미롭다

이분법적 세계관이 꼭 틀리다고 할 수는 없고, 이해시키기가 쉽다는 장점도 있다. 이러한 간략한 설명이 대중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아주 효율적이며 지금까지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납작해진 설명을 받아들이는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좁아지고, 스펙트럼 내의 다양한 요소들은 지워진다. 흑인과 백인만을 두고 미국의 인종차별을 바라본다면 미국 사회 내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소수인종들(중남미 혹은 아시아에서 이주한)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더 작은 관심을 받게 된다. 흑인과 백인이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분명 전체적인 사회 지형에서 자신에 더 가까운 구성요소가 있음에도 다른 관점(보통 기득권인 것 같다)에 동조하는 상황들도 가끔 보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세계관을 상호 배타적(mutually exclusive)인 경쟁관계로 이해할 때 생긴다.

의견을 결집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은 공동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을 이분법적이고 단순하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구성 요소들을 상호 배타적이고 경쟁적인 관계로 단정 짓는 경향을 자주 보게 된다. 페미니즘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는 것도 페미니즘을 통해 유해한 남성성이 해결되고 남성과 여성 모두가 더 나은 사회여건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 아니던가. 비슷한 맥락에서 흑인의 인권이 신장된다고 해서 백인의 인권이 후퇴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꼬마도 심지어 알고 있는 사실
#해시태그를 넘어선 이야기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장황하게 썼지만, 결국 다양한 범위의 논의를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공유하는 시도들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주장을 나누고 이해하기에 140자/280자로는 부족한 경우가 너무 많다. 해시태그 이상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에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잘 정돈된 정보'의 필요성은 계속 커진다.

동시에, 정보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한 번에 담기 위해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이 글을 다양한 관점에서 지난 몇 주 동안 계속해서 수정해 왔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글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속도의 사회에서는 각각의 텍스트에 지워지는 의미가 더 커지기도 한 탓이다.

무엇보다도,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승리로써 이기는 것이 아니라 연대로써 이기게 될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에 글을 부은 지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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