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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Dec 31. 2021

꾸준한 존재의 진동이 가진 힘.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채 퇴근하던 아빠는 매일 밤 빠지지 않고 나에게 책을 읽어주곤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야기들은 기억의 손아귀를 모래알처럼 빠져나갔지만  그 이야기를 읽어주던 아빠의 모습은 단단한 알맹이가 되어 뇌리에 남아있다.
아빠는 순박하고 우직하게, 가족만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분이다.

아빠는 어려운 시절 열었던 시장통 옷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이것저것 요구하면 그걸 내치지 못해서 엄마의 속을 태우던 사람이었다. 아빠는 지하철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10년 동안 출퇴근하며 동생과 나를 사회로 내보내면서도 여느 아버지가 으레 하는 술주정도 없이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오셨다. 운전을 하던 아빠가 나지막이 내뱉다 집어삼킨 상소리에 문득 지금껏, 3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아빠가 운전 중에 욕은커녕 상소리를 하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잔잔하게 깨닫게 하는. 아빠는 그런 사람이다.


어린 시절 명절마다 찾아뵌 할아버지는 항상 뒤에서 우리들을 바라보시다가 문득문득 맛있는 것을 뭉툭하게 권하시곤 했던 분이셨다. 노환이 할아버지를 휩쓸고 이윽고 머나먼 곳으로 모셔갔을 , 나는 그렇게 깊은 대화도 나누지 못한  떠나버리신 할아버지의 무엇이 나를 그렇게 서럽고 슬프게 만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장례식장에서 울었더랬다. 그리고 지금,  누구보다도 할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아빠를 보면서  이유를   것만 같다.


한 번의 강렬한 충격이 주는 인상보다 더 강력한 것은 미약하지만 꾸준한 존재의 진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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