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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Nov 16. 2021

급기야 스페인 정치인의 팬 비슷한 것이 되었다

'밈(meme) 정치'의 대가, ERC당 대변인 가브리엘 루피안.

며칠 전 스페인에서 소소하게 회자된 비디오 클립이 있었다

카탈루냐를 기반으로 한 좌파 정당인 ERC(Esquerra Repúblicana de Catalunya)의 대변인(portavoz)인 가브리엘 루피안(Gabriel Rufian)이 개최한 의회 기자회견(Rueda de prensa)에서 벌어진 에피소드였다. 한 극우 매체에서 며칠 전 이 대변인이 Cadena SER에 출연하여 스페인의 유명 가수 C. Tangana의 노래에 맞추어 바차타(Bachata)를 춘 것을 비꼬며 '의회 출입 자격이 있는 우리와 같은 언론사들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Cadena SER에 나가서 바차타를 추고 여자들과 헛 짓을 하고 다니는(perrear)것을 더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극우의 미디어 버블(burbujas mediáticas)에 일조하지 않겠다'라고 답변을 일축해 버린 것.

간결하고 유쾌한 발언으로 눈길을 사로잡다

스페인에서 지내면서 일을 위해서 읽기 시작한 뉴스를 통해서 배우기 시작한 현지 정치였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도 스페인어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거니와 무언가 이만큼 알게 된 뉴스를 따라잡지 못한 채 놓아버리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에 단신과 영상 위주로 스페인 뉴스는 꾸준히 접하고 있었다.

의원 내각제로 운영되는 스페인 정치의 특성상, 매체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주요 정당들의 대변인(대표)들이었는데, 대부분은 틀에 박힌 방식으로 무미건조한 발언을 하기 마련이었다. 대표적으로 정석적인 발언을 하는 두 양대 정당(PP, PSOE)과는 달리,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정당들은 군소 정당들이었고 대표적인 정당이 중앙 정계에서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가진 PNV(Partido Nacionalista Vasco, 북부 바스크 정당), Ciudadanos, 그리고 ERC였다.

그리고 그중 단연 강력한 화력을 가진 토론자는, ERC의 가브리엘 루피안

Ciudadanos는 주로 양대 정당을 싸잡아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만 해서 듣는 재미는 없었고, PNV의 대변인인 아이또르 에스테반(Aitor Esteban)은 현명하고 차분한 어르신의 말투로 양대 정당을 어르는 방식의 화법을 주로 사용했다.

반면, 가브리엘 루피안의 발표는 단연 귀에 쏙쏙 박혀서 기억에 남았다. 간결했고, 핵심 구간에서의 완급 조절이 좋아서 외국인인 나의 입장에서도 집중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유와 표현이 강렬하고 시원했다. 앞의 영상 클립에서도 보았듯 전혀 거침이 없이 에둘러 표현하는 것도 없이 직접적으로 PP와 Vox를 싸잡아서 비난하는 모습이 정치를 마치 스포츠 관람하듯 보게 하는 마력이 있었고, 그러한 태도로 우파의 욕을 항상 몰고 다니는 정치인이었다. 

어느덧 인스타그램에서도 그를 팔로잉하기 시작했고, 유튜브 피드에 그의 이름이나 얼굴이 뜨면 웬만하면 바로 보기 시작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 정도라면 나는 이 정치인의 팬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설적이고 신랄한 태도로, 가히 '밈(meme) 정치'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그와 관련해서 즉각 떠오르는 에피소드는, 역시 2017년 10월 카탈루냐 독립 선언과 관련된 발언을 하기 위해서 의회에 삼성 프린터기를 들고 온 것인데... 이건 급기야 인터넷 상의 실제 밈(meme)이 되어 떠돌기도 했다. 이후 가브리엘 루피안은 2018년, PP당의 전 총리 호세 마리아 아즈나르(José María Aznar)의 회계 비리와 관련된 청문회에 참석하면서 직접적으로 아즈나르 전 총리를 들이받으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나를 착취하는 건 스페인이 아니다. 나를 착취하는 건 나의 할머니와 똑같은 연금을 받고 있는 말라사냐나 라바삐에스에 살고 있는 노인들이 아니다. 나를 착취하고 나로부터 훔쳐가는 것들은  그 깃발(국적)에 상관없이 라또, 바르세나스, 미옛, 그리고 뿌욜과 같은 부패한 정치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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