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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Jan 31. 2022

Benidorm Fest: 스페인 유로비전 출전곡 결정

올해 스페인의 전망은 (언제나처럼) 밝아 보이진 않는다.

올해 이탈리아 투린에서 개최 예정인
유로비전 콘테스트에서 스페인을 대표할 노래가 정해졌다.

Benidorm Fest에서의 공개 경연을 통해 선발된 곡은 ‘샤넬(Chanel)’이라는 쿠바계 카탈루냐 아티스트의 레게통 댄스곡 ‘슬로모(SloMo)’였는데, 50%의 전문 심사위원 점수와 25%의 문자투표, 그리고 25%의 대중 심사위원 심사를 통해 결정되었다. 2위는 각각 ‘리고베르타 반디니(Rigoberta Bandini)’라는 카탈루냐 싱어송라이터와 ‘탕슈게이라스(Tanxugueiras)’라는 갈리시아 출신의 보컬 그룹. 그런데, 2위와 3위를 포함한 다른 그룹에 비해 우승자 ‘샤넬'에 대한 전문 심사위원 점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는 데서 편파 심사에 대한 논란이 터져 나왔다.

결승전에서 문자투표와 대중 심사위원 심사만으로 정해진 순위는 1위가 탕슈게이라스, 그리고 공동 2위가 샤넬과 리고베르타 반디니였다. 그런데 탕슈게이라스가 고작 30점을 받은 전문 심사위원 점수를 리고베르타 반디니는 46점, 샤넬은 무려 51점을 받으면서 대중의 심사를 아예 뒤집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그렇게 정해진 우승곡이 1) 영어 가사로 된, 2) 전형적으로 성을 상품화하는 레게통 팝이라는 점이 더욱더 대중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이는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은 다른 두 곡이 너무나 다른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한데.

Rigoberta Bandini의 ‘Ay, Mamá’
Mamá, mamá, mamá / Paremos la ciudad / Sacando un pecho fuera al puro estilo Delacroix
어머니여, 들라크루아처럼 가슴을 드러내며 도시를 지배합시다(멈춥시다).
No sé por qué dan tanto miedo nuestras tetas / Sin ellas no habría humanidad ni habría belleza
우리의 가슴들이 왜들 그렇게 사람들을 겁주는지 모르겠어요 / 그것들이 없다면 인간성과 아름다움 또한 없을 텐데

어머니의 위대함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바라본 리고베르타 반디니(Rigoberta Bandini)의 노래는 가사부터 매우 강렬한데, 동시에 흥겨운 리듬으로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노래로 고른 지지를 받았다.

Tanxugueiras의 ‘Terra’

세 명의 갈리시아 여성으로 구성된 탕슈게이라스(Tanxuguerias)의 노래 ‘테라(Terra)’의 가사는.... 갈리시아어로 되어 있어서 온전한 해석이 불가능하다. 루고(Lugo) 출신의 친구에 의하면 갈리시아 지역의 민요를 기반으로 한 노래라고 하는데, 매우 웅장한 느낌의 주술적인 느낌 물씬 나는 무대가 매우 인상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Tanxugueiras를 응원했었는데, 곡과 무대가 정말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이 정도면 우승은 아니더라도 좀 반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항상 지정학적인 맥락에서 투표가 이루어지는 유로비전 콘테스트이지만 최근 우승곡들이 좀 강력학 콘셉트이나 이미지를 내세워서 표를 몰았다는 점에서 유리하지 않을까 싶었던.

그런데 왜 이런 레게통 팝이 우승하게 되었는가 생각해보면, 또 납득이 되기는 한다. 세계적으로 사람들에게 친숙한 멜로디이고, 무엇보다도 영어로 된 가사는 소구 하기 편하기도 하고. 굳이 이유를 더 꼽자면 유로비전 출전곡 중 스페인에서 반응이 좋았던 노래들이 사이프러스 대표의 ‘Fuego’와 같은 팝이기도 했기에. 

21%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Benidorm Fest는 급기야, 정치권으로까지 그 불길을 옮겨가고 있다.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은 갈리시아어로 된 노래, 그리고 주체적 페미니즘을 담은 노래를 제치고 다른 노래가 우승한 페스티벌의 결과를 두고 진보/지역 정당의 다양한 정치인들이 결정에 대해 부정적인 트윗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지역 정당은 유로비전 출전곡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Benidorm Fest를 개최한 국영 RTVE 방송국에 세부적인 정보 요청을 하기도 하는 등 나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결과가 번복될 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굳이 주류 팝 시장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유로비전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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