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국회의원이 여기에도 있네.
2022년 초, 스페인 정계의 최대 이슈는 바로 노동 개혁(Reforma Laboral)이었다. 집권당 PSOE의 핵심 인사로, 차기 총리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노동부 총리 욜란다 디아스(Yolanda Díaz)가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로, 이전 집권 정당인 PP당의 노동법을 대체하며 고용 안정 등을 꾀하는 법안이다.
법안이 가져올 변화의 규모로 인해서 뉴스에도 끊임없이 오르내렸고, 과연 통과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 또한 동시에 제기되었다. 현재 PSOE와 함께 집권하고 있는 군소 지역 정당(카탈루냐의 ERC를 주축으로 하여 북부의 PNV와 EH Bildu)이 해당 법안의 추진이 협상을 통해 얻어진 결과가 아니라 PSOE의 일방적인 강요에 의한 것임에 대해 반발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법안 표결에서 '반대'로 표를 행사했고, 이렇게 PSOE와 욜란다 디아스의 정치적 미래, 더 나아가 연정 정부의 구성도 위험해지는가 싶었는데.
법안을 반대하던 야당 PP의 국회의원 한 명이 전자 투표에서 실수로 '찬성'을 해,
1표 차이로 노동 개혁법이 통과되어 버린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상황의 전말은 이렇다. 카세레스(Cáceres)의 국회 의원인 알베르토 카세로(Alberto Casero)는 자택에서, 원격으로 법안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고, 당시 한 30개 정도 되는 법안에 대한 의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노동 개혁법에 찬성하게 된 것.
그렇다면, 대체 이 법의 내용은 무엇일까: 비정규직 개혁, 공평한 노사 협의
2012년에 마지막으로 개정되었던 이 법이 새롭게 개정되면, 현재 스페인 노동시장의 약 25%를 차지(2020년 말 기준)하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진다.
여전히 고용기간을 한정 짓는 형태의 노동 계약은 가능하지만, 1) 구조적인 한계(프로덕션의 기간 등)로 인해 발생하거나, 2) 인력 충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임시 고용인 경우에만 가능. 특히 건설현장에서의 일용직 고용은 불가능해지며, 건설 작업이 끝나면 1) 다른 건설 현장에 배치시키거나 2) 퇴직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다만 동시에, 업무량 폭증에 따른 사측의 대응(연말연시 혹은 농번기 등)을 원활히 하기 위해 연 중 90일 동안 임시직 고용을 할 수 있으며 이 또한 노사의 연 초 협의에 따라 연간 짜인 일정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관광업이 발달한 스페인의 경우, 정규직이기는 하나 성수기에만 근무를 하고 비수기에는 다른 노동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contrato fijo-discontinuo라는 형태가 존재한다. 이전에는 실질 노동 기간에 대해서만 경력 산정이 되었던 것을 향후에는 '고용 기간 전체'에 대해 경력 산정을 하도록 하는 것도 소소한 변화.
그리고, 노사 간 분쟁에 의해서 노사 협약의 기간이 종료된 뒤 재계약이 12개월 이상 지연될 경우에 사측이 협약의 조건을 자의적으로 바꿀 수 있었던 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새 법령에서는 '새로운 노사 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기존 노사 협약의 효력을 유지'시키는 것으로 바꿈으로써 동등한 입장에서의 노사 협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스페인에서 발생한 ERTE에 대한 개선도 이루어져, 사회보장세 분야에서의 인센티브를 증폭시켜 중소기업들 또한 이러한 옵션을 선택하기 쉽게 만들었다. ERTE란 Expediente de Regulación Temporal de Empleo의 약자로, 판데믹으로 인해 경영이 힘들어진 업체들이 구조조정이나 직원들의 해고 없이 고용을 유지는 하되 근무 시간을 줄이거나 조건을 조정하여 최대한 고용 안정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스페인 정부가 장려하고 있는 절차.
다시 돌아가서: 진짜 투표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이고, 과연 되돌릴 수 있을까?
처음에 헤드라인만 들었을 때는 '전자 투표에 익숙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실제로 저 30개 정도 되는 법안 중 노동개혁법과 관련되는 의결 사항이 1건이 아니라 2건(법안 자체에 대해 동의하는지와, 그 세부 사항의 진행에 동의하는지)이었고, 카세로 의원은 두 건 모두에 대해 동의를 했다.
게다가, 전자 투표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되며 여느 전자 행정과 마찬가지로 모든 투표가 끝나면 투표 내용에 대한 최종 확인을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절차를 모두 거친 뒤에도 그는 노동개혁안에 대해 찬성을 한 셈.
PP당은 이것이 '기술적인 오류이고, 헌법재판소에 투표에 대한 정정을 요청할 것'이라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으나, 대체적인 반응은 '과거에도 법안 의결 과정에서 투표 상의 실수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정정 요청은 처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라, 그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것 같지는 않다.
국민의 혈세를 받아 그들의 뜻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안일하게 활동하는 건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