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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Mar 04. 2022

잔잔하던 스페인 정계를 갑자기 덮친 드라마 (3)

2019년의 마드리드 주 선거를 앞두고, 파블로 카사도(Pablo Casado)는 자랑스럽게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Isabel Díaz Ayuso)를 내세우며 이렇게 말했다. "95년 알베르토 루이즈-가야르돈(Alberto Ruiz-Gallardón)의 마드리드 주 선거 우승이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의 총리직으로 이어졌듯,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의 마드리드 주 우승이 저의 총리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내세운 고양이가 호랑이인 줄은 몰랐을 것이다.

'큰 오빠' 역할을 자처하며 그녀를 마드리드 주 정부의 수장에 앉힌 파블로 카사도는, 곧 자신을 패싱 하고 상대 정당의 대표이자 현 총리인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와 자신을 동등한 경쟁자로 대치시키며 무서운 속도로 영향력과 지지세력을 키워나가는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 앞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게 된다.

임기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기조연설부터 페드로 산체스를 공격하며,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페드로 산체스를 공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블로 카사도는 왜 존재감이 없었을까?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의 패싱도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엄청난 부정부패 사건을 겪고 난 뒤 내부 경쟁을 통해 당 대표를 거머쥔 파블로 카사도에게 너무나 많은 역할이 주어졌기도 했다. 그는:

부정부패와 카탈루냐 독립 강경 진압으로 추락한 PP당의 이미지를 젊게 개선함과 동시에,

좌파 정당과는 다른 중도 우파만의 입장도 공고히 유지해야 했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신의 당 내 지지 세력도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PP당의 이미지 개선은 필연적으로 중도 '우파'로서의 정체성을 갉아먹기 마련이었고, 극우 정당의 득세는 중도 우파 정당의 이미지를 더욱더 빠른 속도로 희석시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이렇다 할 사회/경제적 배경 없이 '아즈나르(Aznar) 전 총리의 아이들'로 정치를 시작한 인물이었다. 석사 학위 조작에 대한 논란도 있어, 명문 콤플루텐세에서 학사/석사를 마치고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에 비하면 다소 빛이 바라기는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확고한 방향과 지지세력이 없는 상태에서 너무 많은 짐을 지게 되어 갈팡질팡하다 결국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채 표류하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는 어땠을까?

그녀는 '당 대표'가 아니었기에 파블로 카사도보다는 더 운신의 폭이 넓었을 것이다. 일단 마드리드 주만 잘 챙기거나, 혹은 잘 챙긴다는 '인상'만 주어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 테니.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 또한 PP당 부정부패(Caso Gürtel)의 한 축이었던 에스페란사 아귀레(Esperanza Aguirre)의 신임을 받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Caso Gürtel 이후의 새로운 PP'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신을 손쉽게 만들어버렸다.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에 맞서는, 자유의 상징

그녀는 처음부터 '사회주의 혹은 자유(Socialismo o libertad)'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테마를 꾸준히 주창해 왔다. 현 집권 정당인 PSOE가 좌파 사회주의 이념을 앞세워 (특히 코로나 방역에 있어) 국민들을 불합리하게 억압하고 있으며, PP당은 이에 대항해서 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

세부적으로는 그 어떠한 것도 설명하고 책임지지 않지만 일견 듣기에는 너무나 명확한 이 메시지(lema)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yoconayuso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하는 등 거의 '현상'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결국 PP당은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이나, 새로운 당 대표를 뽑기 위한 움직임 속에 갈리시아를 이끄는 알베르토 누녜즈 페이호(Alberto Nuñez Feijóo)의 이름이 다시금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결국 'PP 당의 젊은 동력 수혈'은 실패한 실험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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