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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Apr 02. 2022

패러렐 마더스: 힘겹게 메시지를 완성시키는 두 평행선

Madres Paralelas(2021)

영화 홍보사로부터 관람권을 제공받아 쓴 글이며,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모도바르는 내게 항상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감독이었다. 그는 거창한 사회 현상이나 역사적 아픔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하고 무너지는지에 더 집중했다. 금기시된 색슈얼리티, 강인한 여성들이 세대와 입장을 초월해 이루는 연대를 다양한 형태와 모티프를 기반으로 변주하는 감독. 물론 그러한 이야기에도 충분한 가치는 존재하지만 급기야 감독 자신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에 천착하고 만 전작 ‘페인 앤 글로리(Dolor y Gloria)’에 이르러서는 슬슬 반복되는 이야기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랬기에 차기작의 제목이 ‘Madres Paralelas’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나는 또다시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영화관에 들어섰다.

나를 맞이한 것은 훨씬 대승적인 차원의 이야기였다.

주인공 야니스는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자신으로 이어지는 (모계의) 계승을 이야기한다. 친부인 아르뚜로 앞에서 당당하게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러했듯 나 자신도 싱글맘이 될 것’ 임을 천명하는 모습은 알모도바르의 작품 속에서 익숙히 등장했던 강인한 여성이다. 동시에 성적 지향을 자유롭게 가로지르며 다양한 사건들 속에서 혼란을 느끼는 모습은 묘하게 퀴어함을 풍기는 현대의 스페인 자체인 것도 같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 새로운 세대에게 관습을 계승해야 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는 프랑코 정권의 희생자 유해 발굴을 이해하지 못하는 10대 미혼모 아나와의 대립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편리하게도 한 세대(30세)의 터울을 가지는 야니스와 아나를 통해 알모도바르는 ETA와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스트림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하지만 동시에  극우 정당 Vox가 영향력을 얻고 있는 2022년의 스페인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언뜻 보면 두 어머니의 이야기와 스페인 내전의 이야기가 평행선을 이룬 채 하나의 작품을 이루지 못하는 것만 같지만, 알모도바르는 타인의 자녀를 자신의 딸로 키우는 인물과, 자식을 잃은 슬픔을 자신의 딸로 대체하려는 타인을 이해하는 인물들을 아우르는 사실상의 대안가족의 형태를 극 마지막에 제시함으로써 두 이야기를 힘겹게 통합한 메시지를 제시하는 데 성공한다. 비록 야니스가 세실리아와 아니타를 대하는 태도가 다소 명확하지 않고, 아나의 감정에 대해 극이 충분히 파고들지 않고 해소될 시간을 주지 않아 관객이 다소 불친절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알모도바르는 세대가 다른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기록과 전승이 가지는 가치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록의 확인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매립되고 소모되지 않고  광범위한 차원에서의 사회적 공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소 다른 톤의 메시지를 명료하게 던지면서도 알모도바르 자신의 아이덴티티는 잃지 않은  작품을 보며 나는 감동했다.


P.S. '계승'이라는 테마가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 부분은 두 어머니가 감자 오믈렛(Tortilla de Patata)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장면이었다. 스페인의 국민요리라고 할 수 있는 메뉴를 가르치고 배우는 장면은 마치 한국으로 치면 종갓집 김치를 계승하는 느낌이랄까.

P.S.S. 자신의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한 아나의 이야기에서는 2016년 산 페르민 축제에서 한 여성을 다섯 명의 남성이 집단 강간한 사건(El Caso de La Manada)이 묘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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