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seudonysmo Aug 06. 2022

'가볍게 만든 영화'와 '가벼운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를 보고 나서 든 실망감의 이유를 찾아서

최근 개봉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 중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뇌리에서 잊힌 작품은 '토르: 러브 앤 썬더'였다. IMDB 기록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6억 7천만 불 정도의 매출을 올렸고, 그에 앞서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거의 10억 불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더 거슬러 올라가 개봉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20억 불 가까운 매출을 올리며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007: 노 타임 투 다이'보다도 더 큰 성공으로 그 해의 명실상부한 승자가 되었다. '탑건: 매버릭'이 13억 불 이상의 매출을 올리면서 '토르: 러브 앤 썬더'의 기세를 눌러버린 것이 이 영화가 거둔 소박한 성공의 이유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여러 평가지표와 코멘트들을 보면 이번의 토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갈리거나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나도 '토르: 라그나로크'  '토르: 다크 월드'와는 달리 즐겁게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도무지 이번 영화를 보면서 3편과 대체 다른 것이 없는데  4편을 유독 부정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일까. 근본적으로는 유독 토르 시리즈의 흐름이 일관되지 못했고,  과정에서 관객들이 캐릭터에 애착을 갖지 못해 시리즈를 지지하는 고정 팬층이 다른 마블 캐릭터들에 비해 얕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유독 토르는 몸 좋은 근육 덩어리 이상의 가치를 증명해내지 못했다. 선악이 명확했던 시기에 태어나 선악이 모호한 시기를 지나며 혼돈을 겪는 캡틴 아메리카, 슈퍼히어로라는 이름이 지니는 무게를 개인이 감당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 온 아이언맨을 큰 축으로 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거의 모든 캐릭터들은 팬층이 언급하고 대중에 회자되는 내러티브의 흐름이 있었고 심지어 호크아이마저도 독립적인 시리즈에서 나름의 속사정을 드러내며 잔잔한 공감을 얻었다.

반면 토르는 모두가 익히 그리고 대강은 들어본 북유럽 신화 기반의 오리진 스토리를 1편에서 펼쳐내고 심각하고 묵직한 두 편을 선보인 후 갑자기 다른 행보를 보이며 중심을 잃는데, 타이카 와이티티라는 크리에이터를 만나서 심각한 북유럽 신화와 총 천연색 70년대 메탈 뮤직이 충돌하는 불협화음 속에서 토르를 조롱하는 반 자조적 블랙 코미디 영화가 되어버렸다.
이번 영화는 '가벼운 터치의 영화'가 아니라 '가벼운 영화'였다.

나는 '토르: 라그나로크'가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라고 생각했다. 매력적인 악역도 있었고 이 영화가 어떠한 흐름의 이야기였고 주인공이 무엇을 목표로 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성장을 했는지도 볼 수 있었던 매력적이고 독립적인 한 편의 영화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을 전작과 달리 가벼운 시선으로 가볍게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관객과 뛰어노는 영화였다. 무거운 신화 속에 묻혀서 허우적대던 토르를 쓱 끌어올려 소소한 개그를 입혀서 직선거리를 명료하게 주파하는 영화.

그러나 그 성공에 힘입어 동일한 태도를 취하는 두 번째 영화인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시시껄렁한 개그를 던지는 데 과하게 몰입한 나머지 그 속에 주된 이야기가 묻혀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야기는 명확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주인공을 조롱하는 개그는 급기야 영화 자체가 주인공을 바라보는 관점인 것만 같아서 전작과는 다른 마음으로 주인공과 동떨어진 마음으로 감상하게 되어버려 이야기 자체에 공감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하필 그 개그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캐릭터의 목소리가 감독의 목소리인 것도 웃지 못할 우연인 것 같지만.

모두들 코미디가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들 한다, 정도와 완급을 적당히 조절해야 하고 다양한 대중들이 가장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절충선을 찾아내서 그 지점을 공략해야 하기에 그렇다. 더 나아가, '토르: 러브 앤 썬더'를 보며 지나치게 가볍게 만들어진 영화는 연출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가볍지 않은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되고 그렇기에 관객의 지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패러렐 마더스: 힘겹게 메시지를 완성시키는 두 평행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