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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좋았던 코펜하겐 여행기.

디자인과 건축의 나라,

by Pseudonysmo


덴마크는 머릿속에 그렇게 강한 이미지가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인이 코펜하겐으로의 여행을 추천했을 때는 뭔가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있었고. 명확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이 없고, 목적지에 대해 뚜렷한 이미지나 목표를 가지지 않은 채로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불안한 마음이 더 큰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이미 내 주변에는 덴마크가 많았다는 것을 느꼈다. 칼스버그 맥주, 스테프 핫도그, 매즈 미켈슨과 (악명의)라스 본 트리에, 그리고 레고와 뱅앤올룹슨, 로얄코펜하겐, 비야게 잉겔스.

까페와 레스토랑을 가고, 거리와 박물관을 다니면서 덴마크의 디자인과 구조에서 참신함과 미려함, 세심함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리고 너무 추워서 주머니에서 손도 꺼내기 힘든 탓인지 센서로 작동하는 자동문이 매우 많았다!

어찌되었건, 코펜하겐 여행을 위해 올해 남은 휴가를 모두 소진하고 나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총 6일이었고, 이에 맞추어 코펜하겐카드도 120시간 짜리를 구매했다. 사실 가격이 가격인지라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인데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생각해보니 이건 너무도 잘한 선택이었다.

운하 투어 중 Nyhavn에서 한 컷.

1. Hygge

Hygge라는 말이 있댄다. 오후 4시경에 퇴근을 하고 여유로운 저녁을 즐기는 덴마크인의 생홯양식인데, 여행자의 입장에선 각종 시설이 4시~5시에 닫는다는 의미였으니 고역인 셈. 그런데 되려 5일 정도의 시간을 두고, 오늘 못 보면 내일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돌아다니니까 여행을 온 게 아니라 휴가를 온 기분이 들고, 마음이 괜시리 편했다. 게다가 코펜하겐카드를 24시간 이상으로 구매하면 24시간 단위로 같은 곳을 여러번 방문할 수 있어서, 숙소 앞에 있었던 티볼리 공원의 경우는 내킬 때 마음껏 갈 수 있어 좋았다.

광장 뿐 아니라 온갖 성과 역사적 명소마다 크리스마켓이 들어서 있었다.

2. 생각보다 넓지 않았던 곳

코펜하겐카드로는 1존부터 99존까지의 지역을 마음껏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덴마크라는 곳 자체를 내가 자세히 알아보지 못하다보니, 루이지애나 미술관이나 크론보그 성이 너무나 멀어보여 ‘저 곳이 99존 안에 들어간다고?’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크론버그 성까지 기차로 고작 1시간 밖에 걸리지 않아서 놀라기도 했고...

크론보르 성.

3. 오픈샌드위치, 노르딕 퀴진

북유럽의 물가! 북유럽 여행 하면 꼭 나오는 이야기다. 내내 샌드위치랑 핫도그만 먹고 돌아다녔다는 그런. 나는 5일동안 그래도 배고플 때 제때 제때 챙겨먹었다고 생각은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앉아서 음식을 먹은 건 첫 날과 마지막 날 딱 두 번이었다... 나머지는 까페에서 샌드위치 같은 걸 먹으면서 100~150 크로네 정도로 쓴 기억.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기본적으로 500 크로네(약 5,60유로!!) 정도 들어가는 듯 했고, 메뉴 델 디아 한 번에 12 유로를 내면서 비싸다고 생각했던 마드리드 물가 마인드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의 덴마크 음식 체험은 매우 신기했는데 어찌 보면 우리나라 음식의 정 극단에 위치했기 때문인 것 같다. 재료의 맛을 다 살리고 동시에 터트리면서도 의외로 튀는 것 하나 없이 조화롭고 향긋했던 맛.

심지어 마지막 날 먹었던 식당은 매우 신기했다, 단일 코스메뉴만을 서빙하는 식당이었는데 총 5가지의 음식을 350 크로네에 서빙한다. 싸다고 생각해서 가봤는데...사실은 이 메뉴의 전체요리를 제외한 4가지의 음식에 걸맞는 와인을 한 잔씩 곁들여 마실 수 있었고 이 와인이 350 크로네, 결국 700크로네의 코스 요리였다. 난 돈이 없어서 와인은 한 잔만 마셨지만... 내츄럴 와인이라는 것도 맛 볼 수 있었고 매우 좋았던 기억. 각각의 음식을 셰프가 직접 들고 와서 설명해주는데....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4. 디자인과 건축

성들을 방문하고, 이런 저런 가게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느끼는 건 디자인들이 매우 세심하다는 거였다. 숨어있는 공간들을 어느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덴마크 디자인 박물관에서 의자를 전시해놓은 곳에, 붙박이 장의 격자들 안에 미닫이 형태로 각 의자에 대한 설명을 달아놓은 것을 보았을 때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고. Hay House와 Normann 등 생활 소품 샵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너무 즐겁게 시간을 보냈었다.

또, 보통 유럽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성/성당을 그렇게 즐겨보는 편이 아니었는데, 아말리엔부르그의 경우는 (실제로 사람이 사는 곳을 방문했던 것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뭔가 친숙하고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곳이라서 좋았다.

아말리엔부르그에서 매일 12시마다 하는 근위병 교대식은 의외로 좋았다.

그리고 그 어떤 곳보다 좋았던 루이지애나 미술관! 작품들도 매우 좋았고 그 건물의 구조가 얼핏 복잡히 보이면서도 그냥 그 길을 따라 가면 자연스럽게 전시 작품들과 외부의 석조 정원들까지 (내부에서) 볼 수 있게 되어버리는 것이 너무 좋았다. 건물이 있는 곳의 분위기와 바닷가 절벽도 너무 좋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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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을 보냈지만 시간이 모자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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