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seudonysmo May 05. 2023

영화제에 간다는 즐거운 경험

길다면 길었고, 짧았다고도 볼 수 있었던 취업준비생의 끝에 들어간 회사는 단기 아르바이트, 인턴 시절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책임과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다. 예상을 초월한 얼얼한 삶 속에서 나는 반사적으로 도피처를 찾았고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영화관은 두 시간 동안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곳이었다. 상영 직전 경쾌한 음악과 함께 영화 상영 중에는 핸드폰을 잠시 꺼달라는 요청이 들릴 때는 묘한, 배덕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영화제가 있었다.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 그 이상의 경험. 새로운 장소에서 전혀 새로운 영화를 보고 그 영회를 만든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매우 특별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피였고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이었다. 첫 직장에서의 첫 해, 가장 바쁘고 정신없었던 그 해에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주요 국제영화제를 모두 돌아다녔다.

국내외 여러 영화들이 한 곳에 모이는 영화의 축제. 인터넷에는 항상 모 영화제에 올해는 어떤 작품이 온다더라, 상업적이지 않아 언제 극장개봉할지 모르니 반드시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많은 영화광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식견을 뽐내고 있었다. 상영시간표가 도무지 공개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이우성과, 올해의 게스트는 누구일지 모여 이야기하고, 하루에 영화를 서너 편씩 보는 일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람들.

영화제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랜야드 목걸이에 플라스틱 아이디카드를 목에 걸고, 백팩을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바쁘게 상영관들을 휘적휘적 돌아다니라는 지령이 어디선가 내리기라도 한 것일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영화 재밌게 보시라'는 인사말과 함께 각자의 자리로 향하는 모습도, 계속되는 일정 속에 은은히 배인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죄송하다'를 연신 내뱉으며 통로를 이동하는 관객 1의 모습도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는 영화제 만의 풍경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영화제에 찾아온 나는 관객도, 업계의 사람도 아닌 그 어디 즈음에 속한 애매한 사람이 되었다. 이전처럼 하루에 서너 편씩 영화는 보지 못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행사에 참석하느라 정신없는 일정을 보내지만, 지친 사이 간간히 찾아본 영화관에서는 여전히 몇 년 전의 영화제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상하는 영화가 아니라, 체험하고 공감하는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