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나는 포르투를 가게 되었나.
올해도 어김없이 12월 초, 휴가를 냈다.
작년과 비슷한 시기에, 길이도 비슷한 휴가였지만 그 휴가를 쓰게 된 배경은 달랐다. 작년 12월의 코펜하겐은 뭔가 시간외근무가 끊임없이 쌓여 12월 중에 무조건 소진시켜야 했고, 스페인 근무 첫 해인 만큼 주변 국가를 돌아보자는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
올해는 좀 달랐다. 뭔가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해서 몰아치고 바뀌는 업무환경과 물리적으로 시끄러운 자리에서 일을 하려니 뭔가 절박하게 이 곳을 떠나 혼자 있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강해졌다. 게다가 어느 정도 외부 활동을 하고 나면 반드시 혼자 틀어박힐 시간을 두는 생활에 적응이 되고 나니 진심으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스페인어로는 이런 상태를 'tumbado'라고 이야기 하는데, 말 그대로 '무덤에 묻힌 상태'라는 말이다. 참으로 적절하다...). 어찌되었건, 원래 지난 주말은 휴가를 내고 진심 집 안에만 있을 예정이었다.
그러다 내년 세마나 산타 여행지를 혼자 찾아보던 중 아무 생각없이 휴가 기간에 포르투행 비행기표 값을 라이언에어에 검색하고 나서(대체 어쩌다 검색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포르투행 왕복비행기 값이 19.98유로였다.
아니, 비행기값이 고속버스값보다 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지(9월에 갔던 산세바스티안 왕복 버스값이 60유로 정도였다), 게다가 물가 싸기로 소문이 자자한 포르투갈이 아닌가. 왠지 가서도 그렇게 크게 돈이 나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포르투 숙소를 검색해보았다. 워낙 호스텔이 잘 되어있기로 유명한 포르투갈이니까 호스텔월드를 들어가긴 했는데 이미 '도미토리'는 도저히 갈 수가 없는, 개인실의 즐거움을 아는 몸이 되어버린 터라 혹시 몰라서 '1인실' 필터를 켠다.
포르투의 호텔/호스텔 1인실은 하루에 50유로 선이다.
아니, 그러면 나흘을 다녀온다고 하면 220유로에 숙박/항공이 해결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면 스페인과 물가가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아마 400유로 정도면 왠지 문제 없이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400유로 상당히 비싼 금액이건만 이미 이 때의 나는 라이언에어 페이지로 뭐에 홀린 듯 들어가 항공권 결제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라이언에어 수화물 규정이 좀 이상하다.
애초에는 Non-Priority도 기내 캐리어가 가능했던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Priority+2 Cabin Bags라는 옵션이 있고, 뭔가 다른 Flexi 어쩌고가 있다.
알아보니, '18년 12월부터 라이언에어 수화물 규정이 바뀌어, 그냥 쌩으로 티켓만 사면 몸과 작은 가방만 들고 갈 수 있단다. 그런데 작년 8월 베를린 여행 때 속옷/화장품/카메라(특히 나의 니콘 DSLR 카메라!)를 죄다 백팩에 들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던가를 떠올려보니 - 물론 공항/숙소를 이동하는 순간만이었지만 - 이번에는 슬링백을 들고 다니면서 짐들은 캐리어에 넣어두는 것이 낫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렇다면, 저 Priority+2 Cabin Bags는 얼마인가 보니. 오고 갈 때 8유로씩 해서 16유로. 합쳐서 36유로 선이다. 이래도 싸다.
결국 나는 돈으로 편리함과 시간을 샀다.
나중가서 확인한 사실이지만, 사람의 마음이 다 똑같았던지 포르투로 가는 게이트에는 모두 저 옵션을 구매한 승객들 뿐이었다. Priority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순간.
어쨌든, 포르투를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