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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Dec 13. 2018

자전거, 그리고 전기스쿠터

전기스쿠터 서비스를 둘러싼 마드리드 시내의 잡음.

나는 기본적으로 새로 나오는 서비스는 다 사용해보는 편이다.

내 스스로가 힙스터가 되고 싶은 절박한 절망에서 비롯된 뱁새의 황망한 휘적거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들은 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한 가을...? 즈음부터 마드리드 시내에 이래 저래 생긴 스쿠터.....라기보다는 킥보드에 가까운 것들이 당최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했고, 그것이 Lime이라는 전기스쿠터 쉐어링 업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정말 아무런 맥락없이 시내 도처에 등장했다.

이것이 무엇이냐면,

시내에 이래저래 널부러져 있는 스쿠터의 위치가 Lime 앱 내에 배터리 충전 정도와 함께 뜬다.

여기에 가서, Lime 앱을 통해 스쿠터에 부착된 QR 코드를 스캔하면 기계의 락이 풀린다.

이후 기본료 약 1유로에, 이동한 거리에 비례한 추가요금이 붙는다.

도착한 뒤에는 킥보드 바닥에 붙어 있는 레버를 내려서 주차시킨 뒤, 앱의 버튼을 통해 사용종료를 한 뒤 주차한 곳의 사진을 찍는다.

심지어 전기로 이동하기 때문에 탄소배출도 되지 않고, 밤 사이에 이 스쿠터를 충전해서 돈을 버는 Juicer라는 직업(?)도 있어서 실로 레알 창조경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마드리드가 이런 이륜차에 박한 도시라는 데 있었다.
마드리드의 자전거도로 현황은 실로 형편없다.

Distrito Salamanca 같은 잘사는 동네는 인도 내에 별도의 자전거 도로가 존재한다. 그런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Distrito Chamberí만 가도 일반 자동차 도로와 택시/버스 전용 차선 사이에 애매한 또 하나의 선이 있어서 그 사이로 자전거를 다니게 만들어 놓았다. 친구한테 물어보니 이 자전거 도로도 생긴 지 5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나라면 이런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싶진 않을 것 같다. 최소한 생명보험이라도 들지 않고서는.

그래서 BiciMad라는 공용 자전거 서비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드리드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에 불과하다. 실제로 Atocha역 앞의 거대한 로터리는 차선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상황에서도 너무나 서행으로, 주변 상황을 봐가면서 운전해야 하는데 그 곳을 자전거로 지나려면 그 차량지옥의 한복판을 달려야 한다!!! 이게 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이러한 두려움 속에서, 저 전동스쿠터를 시험삼아 막상 타보니, 쓴 만큼 자동결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일정 금액을 충전해서 쓰라는 안내가 나온다. 옵션은 10유로/20유로/30유로. 나는 저 위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에 10유로만 충전해서 써보려고 하는데, 마침 공교롭게도 '20유로를 충전하면 1유로의 바우처를 준다'는 옵션이 붙어있다.

나는 20유로를 충전했다.

그리고 막상 저 스쿠터를 써보니, 지하철 약 6개 정류장에 달하는 거리를 가고 나서도 실제로 들인 금액은 4유로가 되지 않았다. 음? 뭔가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전동 스쿠터의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것이었다. 아마 시속 10km는 되었을 것 같다. 자전거와 비슷하고 게다가 전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순간 가속이 엄청나다.


사실상 인도에서는 저 스쿠터를 타고다니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드리드 시에서도 이를 인지했던지 이에 대한 새로운 규정(음악을 들은 채 타지 말 것/헬멧을 반드시 착용할 것/자전거 도로 및 차도를 통해 다닐 것)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냈는데.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바르셀로나에서 핸드폰을 쓰면서 전동 스쿠터를 타고 있던 한 젊은이가 한 노인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 노인이 사망했다 (기사원문: 링크) 상황이 이러다보니, 1) 길거리에 너저분하게 들어선 스쿠터와 2) 그 안전성에 대한 불만들이 터져나왔고, 결국 카르메나 정부는 72시간 이내에 이 모든 전동스쿠터를 철수시킬 것을 명령했다 (기사원문: 링크)

그리고 전동 스쿠터들은 시내에서 깔끔하게 사라졌다.

사실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난 사건이긴 하지만, 마드리드만 한정해서 생각해본다면 도시 자체가 이러한 이륜차들을 위한 인프라가 현저히 부족한 것도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P.S. 그래서 내가 충전했던 20유로 중 남아있던 10유로 남짓한 금액은 환불 요청을 했고, 회사에서도 '마드리드의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바로 환불을 해주었다. 희한했던 건 영어로 답변이 왔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시행 초기이다 보니 스페인 현지 지사/법인이 없이 본사에서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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