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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Feb 25. 2019

1년 반 동안의 해외 체류 끝에 잃은 것


2018년 12월 28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기분이 울적해져서 우울한 것들을 잔뜩 보면서 울다가 잠에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잠든 사이에, 유치원 시절부터 알고 지냈고 같은 동네에서 거의 30년 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가 오랫동안의 암 투병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카톡이 도착해 있었다. 약 20일 전만 해도 "폐렴 때문에 한번 힘들었다가 곧 퇴원할 예정이고, 1월 말에 오면 보자"라고 이야기를 했던 친구였는데, 결국 다시 보지 못하게 되었다.

정확히 4년 전, 2014년 12월 첫 회사의 합격 통지 메일을 받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 일순간에 들었다. 막상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다가, 그 생각이 더욱더 짧은 빈도로 뇌리를 스치면서 감정을 후려치는 느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당시는 몸이 짜릿해지는 기쁨이었지만 지금은 누군가 무엇을 통째로 들어내버린 것만 같은 공허함과 슬픔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한 달 뒤, 백내장 수술도 받을 겸 한국에 도착했다. 거의 1년 반 만에 돌아온 한국이었지만,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버스에 일회용 컵을 들고 타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고, 집도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로 옮겨져 있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거의 평생 동안 써오던 안경을 벗어던지는 것은 생소했지만 정말 기분이 좋았고. 거진 2년 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무의미한 헛소리와 시시껄렁한 농담들을 내뱉는 것도 즐거웠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작년에 결혼을 했고 심지어 아이가 생긴 친구도 있었다. 게다가. 작년 한 해 송사에 휘말려 법정까지 가게 된 친구도 있었다. 그 모든 과정에 내가 함께해주지 못했거나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한 해가 지나갔다는 것이 적잖이 마음속에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주일에 한 번씩 페이스톡을 하던 가족들에게도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작은 디테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년 전 작았던 가족들 간의 균열도 상상외로 커져 있었다.

어쨌든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오고 가며 지나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될 것이지만, 2년 전, 스페인에 오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짧은 생각의 결론이었는지 깨달았다. 당시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 페이스에 맞춰서 사는 것" 뿐이었고, 그로 인해서 내가 거의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알고 지내며 쌓아왔던 인간관계가 어떻게 녹아 사라져 버릴지는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더욱더 나아가서, 안일하게 카톡 몇 개, 주말마다 하는 몇 분 동안의 비디오 콜만으로 가족들과의 연대감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국 내가 나만을 위해서 스페인으로 오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돌아볼 수 있었고.

스페인에서의 생활이 더 길어질수록 사라져 가는 것들이 많아질 것이다.

 과연 스페인에서 나는 그 잃어버리는 것만큼의 보상을 받고, 더 나아가 그만큼 새로운 사람들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지가 두려워졌다. 결국 섬처럼 혼자 여기서 살면서 누더기같이 찢겨나간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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