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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May 22. 2019

본사, 주재원, 현지 직원 (1)

현채인을 쪼면 된다

첫 직장에서 OJT 교육을 받으면서 가장 처음 들었고, 그 회사에서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던 것 같다. 지사 입장에서는 본사의 여러 부서가 일을 맡기고, 지사가 가진 시간은 한정되니 본사 담당자는 그들을 당근과 채찍으로 구워삶아서 그들의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게 소위 ‘지사/법인 관리’의 핵심이었다.

너 같은 본사 직원은 처음 봤다

직장 생활 2년 차, 해외 출장을 처음 가게 되었다. 체류 기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말에 목적지에 내리게 되는데, 어쩌다 보니 일요일 아침에 도착하게 되었다.
시차 적응도 해야 하니 잘 수는 없는 노릇이고, 현지에 오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 공항에 픽업 나온 직원에게 “시내로 가서 동네 구경을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라고 물어본다. 소중한 일요일을 뺏는 건 아닌가 조심스러웠는데 의외로 “출장에 와서 우리랑 같이 놀러 다니자고 한 직원은 처음이다”라며 자기네들끼리 내 일정을 짜주고 있었다.
대부분 지사 주재원과 돌아다니느라 자신들하고는 별로 교류가 없었던 듯, 그들은 자신들의 도시 이곳저곳을 설명해주며 자랑하기에 바빴다.

사실 나를 앞세워 여기저기 놀러다니고 싶었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Mr Kim은 매일매일 약속이 있어

본격적으로 출장 업무가 시작되었다. 여기저기 면담을 다니고 발주 진행 건에 대한 이야기도 할 생각에 나름 들떠 법인 사무실에 출근했는데, 주재원 선배는 나를 인사만 시키더니 사무실에서 나가서 사라져 버렸다.
현지 직원은 뭐 항상 있는 일이라는 듯이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면담을 다녔고 그렇게 그 날의 일정은 마무리가 되어가는데 이 친구가 나에게 갑자기 “Mr Kim과 약속이 있지?”라고 물어본다.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어서 되물어보니, 당연히 약속은 있는 거라며 나를 한인 식당으로 데리고 간다. 도착해보니 이미 술상이 펼쳐진 테이블에 주재원 선배가 앉아있는 게 아닌가.
그 뒤로 이어지는 며칠 동안의 낮밤을 가리지 않는 그의 술자리에서 나는 본사의 통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해외 지사/법인의 파견 근무자들이 이렇게까지 근무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실망이었고, 한 편으로는 어차피 나야 잠깐 왔다 가는 본사 출장자인데 그동안 나와 진정으로 같이 일해온 현지 직원들이 이 사람 밑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마음 또한 들었다.

주어진 일을 하고, 대가를 받으면 그만이다

나중에 같이 면담을 다니다 문득 현지 직원에게 이 회사와 Mr Kim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던 게 기억난다.
“어쨌든 나는 회사에서 정해진 만큼의 일을 하고, 그 돈을 받고 경력을 쌓아서 내 길을 가면 된다. 물론 Mr Kim이 답답하고 강압적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일은 일이고, 그나마 인간적인 면도 있는 사람이니 큰 불만은 없어. 때가 되면 그가 가고 다른 사람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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