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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May 27. 2019

페인 앤 글로리(Dolor y Gloria)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자전적 에세이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인 앤 글로리(Dolor y gloria)’는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영화는 이미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른 영화감독 살바도르 마요가 주인공인데, 이야기가 뚜렷하게 하나의 사건으로 기승전결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되려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주머니에서 하나씩 꺼내 풀어놓는 식인데, 하나가 끝날 즈음 다른 단서가 스며들듯이 올라온다거나 앞서 흘러 보냈던 단서 중 하나가 다시 등장하는 식이다.


많은 에피소드들이 치고 빠지는데도 산만하지 않아 계속해서 보게 되는 것이 각본과 편집이 대단하다.

알모도바르 특유의 화려한 색채(붉은색, 녹색, 노란색)는 여기서도 두드러지고, 여기에 무미건조한 톤과 고전적인 스코어가 만나 독특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데, 뭐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영화가 플라멩코 음악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알모도바르가 스페인의 거장 감독이 된 것인가 싶기도 하면서, 최근의 Los Amantes Pasajeros에서도 보여주었지만 초기에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같은 정신 나간 영화들을 만들던 사람이 어떻게 Hable con Ella나 Julieta, 그리고 이 작품처럼 또 다른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만들게 된 것인지 신기하고.

결국 1) Primer Deseo의 충격에서 이어지는 일생 동안의 고통으로 자신이 평생 괴로웠고, 2) (편리하게도 기독교 학교인) 정규 교육과정에서 이러한 생리학적 지식과 세상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지 않아서, 3) 결국 자신의 커리어를 통해 일생동안 세상에 부딪히면서 배워나갔고, 4) 자신의 지난 시행착오와 과오, 실수들을 다시 마주치며 그것들과 화해의 매듭을 짓고 기쁨/안식(gloria)에 도달한다는 이야기.

주제의식만 보면 너무 쌍팔년도 퀴어 영화인데 처량하고 구질구질하지 않고 깔끔하고 무덤덤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P.S. 한 가지 별도로 기억에 남는 것은 오프닝 크레딧과 거기서 이어지는 첫 시퀀스, 그리고 열망(deseo)과 결부되는 미술 작품까지 물과 수채화라는 이미지가 반복되는 것.

P.P.S. 크레딧에 가수 Rosalía가 나와서 의아했는데 초반부 빨래터에서 노래 부르던 아낙네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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