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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May 28. 2019

스포일러 금지가 절대적 황금률이 된 시대에 부쳐

협업의 결과물로서의 영화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이제는 열풍이 사그라든 ‘엔드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사실은 굳이 따로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루소 형제의 온갖 창조주 놀이를 보고, 아래 기사를 읽고 나서 여러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https://www.looper.com/152017/the-endgame-cast-was-blatantly-lied-to-during-a-huge-scene/

엔드게임의 마지막 장면을 배우들은 다른 맥락에서 연기했다는 기사인데, 나는 이 기사가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본 상영본 속에서, 아니 최소한 지금 내가 기억하고 있는 상영본 속에서 배우들은 지시받은 맥락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표정들과 감정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저들의 연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어쨌든 최종 완성본의 내러티브에 부합했으니 좋은 연기였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지시받은 맥락과는 다소 맞지 않는 감정을 전달했으니 나쁜 연기였다고 해야 할까?

왜 저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답은 물론 ‘보안 유지’였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스포일러에 거의 광적인 반응을 보인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더라’가 인터넷 농담이던 시기는 이미 지났고, 2019년의 우리는 스포일러를 집단 린치로 응징하고 있다. 일반 대중만이 아니다, 제작자들도 온갖 추가 촬영을 통해 영화 내용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

하지만, 협업자(배우)도 못 믿게 된다면?

물론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큰 기획물이기 때문에 개인의 비중은 줄어들고, 통제된 연기의 조합으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미션 임파서블 속 미션 전달처럼 한 번 읽으면 자동 삭제되는 앱으로 대본을 준다거나, 자신이 나오는 부분만 대본을 전달해서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배우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간달프의 고난을 이제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대규모 기획물’에서 집중되는 창작 권한

최근 엔딩과 관련해서 전 세계의 관심을 받은 작품은 또 있다. HBO의 왕좌의 게임인데, 엔드게임과는 약간 다른 맥락에서 관심을 받기는 했다. ‘실망스러운 엔딩’으로.


그런데 찾아다니다 보니 이런 기사를 발견했다.

https://www.harpersbazaar.com/culture/film-tv/a27498904/game-of-thrones-finale-cast-reactions/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배우들이 마지막 시즌의 전개와 그 결말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뉘앙스다.


각본을 쓰는 것은 각본가의 재량이지만, 각본 속 인물을 해석하는 것은 배우에게 달려있다. 특히 여러 시즌에 걸쳐 이야기가 발전되는 드라마의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배우가 캐릭터를 해석하는 방식에 꽤나 비중이 실리게 된다. 단적으로, 영화 정킷 인터뷰에서 캐릭터 해석에 대해 감독과 배우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라 제시카 파커가 섹스 앤 더 시티의 프로듀서가 된다거나

결국, 배우 입장에서는 캐릭터 해석과 표현에 제약이 주어지는 상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저런 불만이 나올 법도 한 것.


장르와 포맷은 다를 수 있어도, 우리가 보는 영상 창작물들은 수많은 스태프들이 함께 협력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스포일러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비단 배우가 아니더라도, 작품의 내용과 그 해석 방향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제작자/감독/각본가 등 소수에 의해서 통제된 작품이 계속해서 만들어진다면 앞으로 어떤 작품들이 완성될 것이며, 우리는 그 작품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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