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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Jun 17. 2019

킬링 이브 (Killing Eve, 2018)

이상한 분위기의 이브, 산드라 오

기계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투박하게 복사하는 빌라넬의 모습과 타이틀 롤을 지나, 뜬금없이 비명을 지르는 이브를 만난다. 이내 멍 뚱한 표정으로 ‘양쪽 팔을 베고 잤다’고 고백하는 그녀의 뒤를 쫓고 있자면 내가 이 드라마의 사전 정보를 제대로 들었던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이브는 대화의 박자들을 엇박으로 넘나들고, 뚱한 표정과 동작들로 혼자 겉도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사건의 중심에서 심지어 훌륭한 상황판단으로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단순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같은 드라이한 첩보물일 수 있었던 드라마를 전혀 다른 분위기의 독특한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건 산드라 오가 연기한 이브 덕분이다.

묵직하게 닦은 인물관계에 기반한 탄탄한 미스터리

첩보물은 기본적으로 미스터리를 어떻게 풀고 감는지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연을 날리듯이 단서를 풀고 감아서 관객들이 궁금증을 적기에 해소해 흥미를 잃지도 않고 갑갑해 하지도 않도록 하는 것.
‘킬링 이브’는 인물 간의 관계를 얼레 삼아 미스터리를 풀어낸다. 빌라넬과 이브를 둘러싼 인물들을 한 축은 가족과도 같은 관계로, 다른 축은 차갑도록 프로페셔널한 관계로 설정하는 첫 두세 에피소드가 그 이후 벌어지는 모든 태풍의 눈 역할을 톡톡히 한다. 탄탄한 기반 덕에 인물들을 온전히 신뢰할 수도, 불신할 수도 없는 상태에 관객들을 몰아넣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찰진 밀당 속에 어느덧 시청자는 빠져들고

그래도 역시 이 작품의 핵심은 주인공들인 이브와 빌라넬의 정신 놓은 밀당이다.
드라마는 빌라넬과 이브의 쫓고 쫓기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유사연애관계로 해석하는 듯하다가 말 그대로의 성애적 연애로 끝까지 밀어붙여버린다.
멋모르는 이브를 찻잔에 담아놓고 맘껏 저어내는 빌라넬과의 관계가 어느 순간 전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착의 방향이 180도 바뀌는 것도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섹시한 드라마

조디 코머가 연기하는 빌라넬은 흠잡을 데 없는 패션과 슬릭 한 걸음걸이로 극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피오나 쇼의 캐롤린은 의뭉스럽고 뻔뻔하기까지 한 태도로 미스터리의 그립을 확실히 부여잡는다.
산드라 오의 이브가 드라마의 강력한 훅이라면, 이 둘이야말로 이브의 과도함을 잡아주는 지지대인 셈이다. 물론 훌륭한 로케나 묵직한 편집도 한몫을 했겠지만, 이 드라마가 섹시하고 매력적일 수 있는 건 이 두 인물들의 공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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