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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Jun 21. 2019

다시 돌아온 6월, 마드리드의 Pride Month

“Ames a quien ames, Madrid te quiere”

2년 전 스페인에 온 지 약 두 달이 지난 즈음, 마드리드는 구석구석 무지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마드리드 시청을 채운 은은한 무지갯빛

6월이 Pride Month라는 것도, 서울을 포함해 한국과 세계의 주요 도시들에서 관련 행사와 퍼레이드를 한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2년마다 특정 도시에서 World Pride라는 것을 한다는 것은 알지 못했고, 마침 2017년이 마드리드에서 World Pride를 하는 해였다(2019년은 뉴욕이라고).


마드리드에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무지개 축제의 한 복판에 던져진 셈 이이었고 전 세계의, 적어도 전 유럽의 성소수자들이 한데 모인 거대한 축제를 보면서 나도 무언가 해방되는 느낌으로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이 곳은 가톨릭 국가인데?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치와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가치가 부딪히는 곳.

스페인은, 아니 적어도 마드리드는 이런 면에서는 상당히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곳이다.


단순한 다수결보다는 의회민주주의의 연정을 통해 최대한의 합의를 끌어내고자 하지만 전체주의적 독재를 벗어난 지 30년이 채 되지 않아 아직도 독재자의 유해를 국립공원(Valle de los caídos)에서 옮기는 데에도 제대로 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나라.


왕의 승인을 얻어야만 내각이 힘을 얻을 수 있고 가톨릭적인 가치가 존중받는 곳이지만, LGBT 인권이 유럽 기준으로도 상당히 인정받으며 동성혼이 합법인 나라.


여성이 중앙 정치와 방송에서 빈번하게 보이고 트와이스보다는 블랙핑크와 CLC가 더 인기 있지만, 5명의 남성이 한 여성을 집단 강간해도 ‘성희롱’으로 9년형을 구형받는 나라.

올해도 마드리드의 6월엔 무지개가 떴다.

비록 극우파 정당 Vox의 정계진출로 어수선하기는 해도, 7월 첫 주 토요일에는 여지없이 Atocha역에서 Paseo del Prado를 지나 Plaza de Colón까지 이어지는 퍼레이드가 예정되어 있다. 앞으로 올 마드리드의 6월들도 무지개가 계속 돌아왔으면 싶다.


트럼프와 유럽의 많은 극우정당들이 우리를 암울하게 하고 블랙 미러가 떠난 자리를 채운 수많은 디스토피안 드라마들이 미래에 저주를 내린다고 해도, 이런 무지개가 세계 각지에 계속 뜬다면 조금은 위안이 되고 계속 싸워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네가 누구를 사랑하던,
마드리드는 너를 사랑한단다
(Ames a quien ames, Madrid te qui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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