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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Apr 05. 2017

미스 슬로운.

총기규제 법안을 둘러싼 두 세력의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미국 최고의 로비스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미스 슬로운(Miss Sloane, 2017)’은, 그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상대방이 어떠한 수를 쓸 지 미리 예측하고 그 대응을 미리 준비하며, 그 수가 판에 등장하는 즉시 대응하여 끊임없이 상대방을 놀라게 하는 것’이 로비라는 그녀의 설명은, 인상적이게도 전반적인 영화의 구성과 맞닿아 있다.
 초반 10분 가량의 플래쉬백 구조로 기본적인 상황과 인물들을 제시하고 나면, 앞서 던져놓은 단서의 활용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상호대립을 이어가며 긴장감을 유지해 나가다가, 수단/목적에 대한 논점에서 더 나아가 게임이 이루어지는 판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관객의 시야를 넓히며 마무리를 짓는데, 명민하고 안정적이며, 동시에 경제적이다.
 제시카 채스테인의 연기가 단연 발군이다. ‘제로 다크 서티’ 이후 쌓아올린 필모그래피를 통해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로는 할리우드에서 거의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여기서도 거의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읊조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침착하게 대사를 이어나가지만, 강렬한 독백 없이도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하는 매력이 분명히 존재하며,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파워수트와 가죽 자켓, 그리고 위협적인 힐로 완벽하게 시각화되어 인물을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이러한 이미지의 공고화는 영화가 그녀를 담아내는 방식에서도 뚜렷히 드러나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호칭이다. 동료 중 그 누구도, 심지어 그녀의 상관마저도 그녀를 ‘리즈’라고 부르지 않고 ‘엘리자베스’ 혹은 ‘슬로운 씨’로 칭하며, ‘리즈’라고 부르는 유일한 인물인 샌포드는 결국 그녀의 언변과 논리에 처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영화 곳곳의 디테일을 통해서도 이러한 캐릭터가 명확해지는데, 이를테면 청문회를 준비하기 위해 변호사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도, 그녀는 변호사의 사무실로 들어가지 않고, 다소 중립적인 지역인 문과 복도까지 그를 끌어내어 첫 대면을 한다.
 비록 제시카 채스테인의 원 톱 영화임은 분명하나, 영화를 채우고 있는 주요 요소들 또한 여성이라는 점 또한 특기할 만 하다. 플롯 상 쟁점이 되는 법안 통과에 가장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 인구구성원 또한 여성들이라는 것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자. 서사적으로는 총기규제를 완화하려는 세력이 슬로운의 대척점이나, 인물 묘사 전개에 있어 대척점에 위치하는 것은 에스메 매뉴채리언(구구 바샤-로)과 제인(앨리슨 필)으로, 플롯의 흐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도 그들이다. 영화 곳곳에서 주요 인물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생기는 에피소드 또한 흥미롭다.
 이렇듯 흥미로운 영화이지만, 마무리가 다소 빈약한 점은 지적할 만 하다. 최후의 결정적 한 방이 다소 ‘데우스 엑스 마키나’스럽다는 인상을 살짝 받을 수 있고, 마무리 단계에서 ‘주인공’으로써의 선을 강요하려는 시도에서 인물의 일관성에 약간의 균열이 가는 느낌이다. 또한, 각본 전체적으로 상호 대립을 통한 캐릭터 연출에 천착하다보니 그러한 방식으로 연결되지 않는 인물관계에 대한 묘사가 다소 부족한 것도 이러한 빈약함에 한 몫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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