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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Jun 06. 2016

박찬욱의 영화 '아가씨'

관음, 묘사, 그리고 대독에 대한 이야기.

아가씨의 저택에 다다른 숙희는 사사키 부인으로부터 저택의 구조를 안내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소개를 처리하는 영화의 방식인데, 응당 사사키 부인의 입을 통해 나와야 할 소개는 나레이션으로 처리 된다. 이후 이어지는 모습들이 다 이런 식이다. 관음과 묘사, 그리고 낭독(혹은 대독).

히데코는 끊임없이 억압당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읊어대며 착취당하는 인물이고, 심지어 자신의 감정 표현조차도 타인의 표현을 빌어야만 가능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이 생경하게 자신의 의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하녀를 만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해방되는 이야기.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고, 김태리 김민희 너무나 아름다운데 레즈비언 로맨스로도 감정의 전개가 맛깔나면서 명확하고, 케이퍼 무비로써도 뒤집고 엎는 재미가 일품.

약간 2부와 3부는 눙치듯이 나눈 것 같기도 하다. 정/반/합의 흐름이나 마주보는 거울의 상이 아닌, 계속된 붓칠로 더 명확한 상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

아가씨에서 나온 레즈비언 섹스를 '남성중심적인 시각의 한계'라고 하던데,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활자와 그림, 그리고 목각인형을 통해 박제된 성으로 착취를 당해온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정의하면서 체온을 되찾는 과정의 표현.
미술/촬영이 너무나 아름답다. 수채화같은 풍경에 인물들이 점처럼 찍혀서 화폭에 펼쳐진다. 특히 서재를 처음 들어가는 어린 히데꼬를 잡는 카메라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래를 잘라내버려서 상황 파악이 안되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고.

PS. 나는 맨 마지막 장면에 수조 속 문어밖에 안 보이던데, 설마 그렇게 재현이 되는 것인가 해서.

PS. 철저하게 남성들은 농락당하고 여성들이 판세를 뒤집어버리는 것이 나름 통쾌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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