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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Aug 12. 2019

‘유럽의 다양성’이 가진 허상

유럽의 ‘다양성’이 아니라, ‘유럽의’ 다양성

영화를 보러 갈 때 리딩 필름으로 Europa Cinema의 트레일러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https://youtu.be/lT-QLJ891B0

잘 찾아보면 서울과 부산도 있음.

전 세계의 도시에 ‘유럽의 다양성’을 알리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걸 보고 있으면 비 EU 국적의 EU거주민으로써 씁쓸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민자들의 나라’가 무너진 곳에 들어온
정치실험의 누비이불

고등학교, 대학교 때 배웠던 EU 정치실험의 핵심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민족주의의 과잉을 억누르고 우리 모두 화합을 이루며 다양성을 인정한 공존을 통한 번영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메시지의 각인효과라는 것은 대단해서, 나에게 EU는 9/11 테러 이후 백인우월주의의 선봉장이 되어버린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 대한 대안이었다. 흔히 ‘멜팅팟’과 ‘퀼트 직조물’로 비교되었던 두 패권 세력 중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곳은 후자인 것만 같았다.

유럽의 ‘다양성’이 아니라, ‘유럽의’ 다양성

교환학생으로 왔던 스페인은 인종차별이 만연한 곳이었다.

‘동양인=중국인’이라는 생각으로 길을 걷다 보면 ‘니 하오’를 던지는 호객꾼과 걸인들이 너무 많았고, 밤에 놀러 나가면 눈을 찢어보이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물론, 처음으로 나가본 외국이라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었고 지금은 그렇게까지 빈번하게 생기는 상황은 아니지만.

다시 돌아온 스페인에선 프랑스/독일이 EU 내의 핵심 직책을 가져가고, Open Arms와 Aquarius와 같은 난민 구조선이 정박을 거절당하고, 스페인의 Vox와 같은 극우정당들이 목소리를 얻고 있었다.

결국 이들이 주창한 ‘다양성’은 사실 유럽, 특히 서유럽의 강대국 내의 다양성이란 것을 깨닫고 나니 환상이 깨짐과 동시에 이들의 무례함에 대해서도 그렇게 큰 분노가 일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이 씁쓸하긴 하다.
유럽연합의 취지가 지금도 유효한가?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아프리카의 난민 유입은 현재 EU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이고 특히 지중해에 위치한 스페인/이탈리아에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EU가 주창하는 ‘사회적 배제와 차별을 철폐하고 시민들에게 복지와 평화를 제공한다’는 설립 취지는 유럽연합 내부와 주변부에 위치한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이쯤 되면 그렇게도 전 세계에 선보이고 싶었던 ‘EU의 다양성과 포용’이 예전 서방세계 봉건제 내에서의 공존과 인종 구성원만 빼면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의문이 든다.

결국, 아무리 훌륭한 누비이불도 지구를 다 덮을 정도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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