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seudonysmo Aug 23. 2019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2019)

여러 층위에서 메타적으로 다가오는 영화

https://www.imdb.com/title/tt7131622/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그들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그 뒤로 흐르는 사운드트랙도 좋았다.


California Dreaming를 배경으로 깔고 도로를 여유롭게 달리던 차를 잡아낸 시퀀스도 좋았고, 영화 속 영화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그대로 영화의 시선이 되어버리는 순간과 동시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훌륭하고 광기 어린 연기도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릭 달튼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감정의 높낮이가 너무 명확하다.

뚜렷한 내러티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에피소드의 나열들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엄청난 연기와 만나 그 캐릭터를 명료하게 직조해내고, 그 캐릭터로부터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노스탤지어가 조각되어 완성됨으로써 작품의 목적이 완성된다.


앞서 말한 몇몇의 장면들은 눈이 부시게 놀랍고, 샤론 테이트와 찰스 맨슨이 만나는 순간부터 발생하는 메타적 긴장감은 대단하다(하나 이 사건을 모른 채 본 지인의 경우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마지막 저 제목이 가지는 우화적 내러티브가 완성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도 명확하고.

그러나, 딱 거기까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릭 달튼 이외의 모든 캐릭터를 배경으로 만들어버리고 심지어 여성 혐오가 전면에 걸쳐있으며 소수인종(이소룡)을 백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캐리커쳐로 만들어버린 영화였다.


극 중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다른 백인 남성(클리프 부스)은 충실한 사이드킥을 넘어 현자로 보이기까지 함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악의 세력’으로 묘사되는 히피 집단이 죄다 여성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이 나이 든 노인 혹은 다른 남성을 착취해서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브루스 리는 어떤가? 그를 단순히 허세 넘치는 싸움꾼으로 표현하고 그가 서양의 세력과 맞닥트리는 순간 빨리 쿠엔틴 타란티노가 마지막 영화를 찍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면 싶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고 로비가 연기하는 샤론 테이트.

이 모든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사건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막연하게 이 플롯의 핵심에 놓이지 못하고 유령처럼 주변부를 명랑하게 배회하기만 한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영화를 보러 가는 장면이 특히 안타까운데, 마고 로비는 분명 그 순간 영화에 대한 리액션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이 가라앉을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고, 그 순간은 휘발되어버리는데 결국 이건 그 캐릭터를 어떻게 처리할지 몰랐던 감독의 잘못이라고 밖엔 할 수 없다.

백인 시스젠더 헤테로 섹슈얼 감독의 시선에서 바라본 할리우드의 추억
커리어의 정점이 지나갔음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주인공 릭 달튼과 마찬가지로, 편협한 감독의 스코프가 가지는 한계를 너무나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층위의 메타 영화라 할 만하다.


P.S. 브루스 리가 나오는 첫 시퀀스에서 영화관의 스페인 사람들 죄다 다 웃는데 나만 어이없게 앉아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명확하게 다른 관객들과 같은 방식의 반응을 노리고 만들어진 납작한 장면이었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목표 관객에 있어 ‘아시아인’은 고려대상이 아니었을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4년, 얼마나 왔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