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방언학’에서 깨달은, 스페인을 이해하는 열쇠

스페인은 하나의 나라가 아니다.

머나먼 옛날, 교환학생으로 스페인 땅을 밟았을 때 나는 호기롭게도 ‘스페인어 방언학’이라는 수업을 신청했다. 마침 직전학기 한국에서 ‘스페인어 음운론’이라는 수업을 들었던 터라 좀 더 언어학적인 측면에서의 지식을 넓힐 수 있으리라는 마음에.

12주 뒤, 나는 한국에서도 결코 한 적 없는 ‘시험 답안지에 교수님께 편지 쓰기’를 하고 3점, Suspenso(낙제)를 받았다.
(만점은 10점이었고 통과 기준은 6점)

결국 나의 학적에는 기록조차 되지 않은 수업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스페인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을 가르쳐 줬던 수업인 것 같다.

스페인은 사실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

수업 첫날 교수님은 들어오자마자 스페인의 온갖 지역을 부르며 그 지역 출신의 학생들에게 강의실 앞쪽 좌석을 지정해 주었다. 지금 정확히 그 지역들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대략 이 지역들이었을 듯하다.

카스티야 라 만차(Castilla-La Mancha)

카스티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

아라곤 (Aragón)

아스투리아스 (Asturias)

갈리시아 (Galicia)

안달루시아 (Andalucía)

우리가 흔히 스페인어라고 하는 언어는 사실 카스테야노(Castellano), 즉 카스티야(Castilla) 지방의 언어이다. 이 지방은 스페인의 중심부인데, 이 지역과 라 만차(La Mancha) 지역이 합쳐져 하나의 행정구역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은? 바스크어(Euskera)와 카탈란(Catalán)과 같이 ‘아예 다른 정체성’을 주장하고 있는 언어들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놀랍게도 모든 지방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갖고 있다.

심지어 스페인 구글은 이 중 몇몇 언어들에 대한 검색 기능이 있다.

적어도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안달루시아 지방은 안달루스(Andaluz)를 쓰고, 아라곤 지방은 아라고네스(Aragonés)를, 아스투리아스는 아스투리아노(Asturiano)를, 그리고 갈리시아는 가예고(Gallego)를 쓴다거나 하는 식. 심지어 두 지방이 마주치는 지방에서는 두 언어가 섞인 사투리 언어(예: 레온과 아스투리아스가 만나면 Astur-leyonés가 되는 식)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 실제로 이 언어들은 얼마나 다른가?

방언학 수업을 들은 지 수년이 지난 지금 기억에 남는 내용은 두 개였다.

지역에 따라 J의 발화 방식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똑같은 Junta라고 해도 북쪽은 이를 Xunta라고 이야기하고 동쪽(Aragon)은 Chunta라고 이야기하는 식.

지역에 따라 마지막 음절의 o가 u나 ou로 바뀐다

12주밖에 되지 않는 수업 과정에서 이 많은 언어들을 배우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고, 그렇기에 각 지역들의 언어들이 가진 음운론적 특성만을 짚고 넘어갔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많은 언어들이 사실 같은 단어들의 일부만 실제 그 지역에서 말하는 발음에 맞춰 변형시킨 ‘사투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른 언어라고요.....???

만일, 우리나라에서 제주도의 사투리를 ‘제주어’라고 말하고, 충청도의 사투리를 ‘충청어’라고 말하며 ‘우리의 언어들은 서울어와는 다르다’라고 지방 정부들이 나서기 시작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으로서, 스페인의 사고방식을 찬찬히 보자면 이런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모든 것을 가운데로 통합시켜 한 번에 해결하려는 사고를 하는 반면, 이들은 모든 것들을 분할시키고 개별적으로 판단한다.

비슷한 성격을 가진 집단은 모두 같은 구조를 가질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만 스페인은 그렇다 한 들 모두가 각자의 필요에 따라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