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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Oct 01. 2019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여행기 (1)

하루 종일 버스만 탄 이야기

할부의 끝은 새로운 할부를 부르기에

가을이 되니 다시금 여행을 하고 싶어 졌다.

수술한 눈도 더 이상 안약을 넣지 않아도 되었고(백내장 수술 때부터 계속 넣어왔으니 사실상 올해의 절반을 안약들과 보낸 셈) 갑작스러운 한국행으로 인한 할부들도 대강 정리가 끝난 상황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카스티야, 카탈루냐, 아라곤, 바스크와 안달루시아는 가 보았지만 갈리시아와 아스투리아스는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가기로 하였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순례길’로 많이 알려져 있고, 갈리시아 정부도 이러한 수요에 맞추어 대성당 가이드에 한국어본을 추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생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과감히 주말여행을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는다.


세계의 끝, Fisterra

갈리시아어로 ‘땅의 끝’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곳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순례자들이 자신의 옷(순례자들은 자신이 순례자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비슷한 복장을 한다)을 태우는 곳이라고 한다.

"세상에 평화가 깃들기를"

머나먼 옛날 리스본 여행을 갔을 때 방문했던 신트라 근방 호카 곶(Cabo da Roca)도 생각이 나서 가 보기로 했다. 나에게 주어진 날은 토요일과 일요일 단 이틀이었고 일요일엔 비가 온다기에 토요일 산티아고 도착과 동시에 바로 피스테라로 이동했고, 결국 토요일 하루를 여기에 다 쓰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고작 일요일 하루 동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전체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밤에 조금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의외로 중심부는 매우 작은 도시여서 반나절 만에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피스테라를 가기 위해서는 산티아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다시 버스를 타야 하는데(Plaza de Galicia에서 1유로를 내고 5번 버스 탑승), Monbus라는 업체가 운영하지만 정작 터미널에 도착하니 그 업체의 부스는 없었다. 좀 헤매다가 발견한 Info센터에 물어보니 전혀 다른 이름이 달린 부스를 알려줘서 다행히 원하는 시간의 버스를 탈 수 있었다(편도가 9.85유로이고 왕복 할인 따위는 없다).


12시에 출발한 버스는 약 1시간 반을 거쳐 피스테라로 직행했고, 정작 도착한 곳은 그저 그런 해안가 마을....

아니 좋긴 한데.... 이러려고 내가 공항에부터 허겁지겁 버스를 갈아타고 여기까지 왔던가...

알고 보니 내가 기대한 광활한 바다는 그 마을에서 약 3km를 더 가야 나오는 등대에 있었다.

왕복 4유로를 내고 타는 꼬마기차가 있긴 했지만 정오/오후 5시에 운행하기에 내 일정과는 시간이 맞지 않았고 결국 행군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결론적으로 정말 잘한 일이었다.

오르막길이 힘들긴 했지만 오며 가며 순례자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결국 그 길의 끝에 마주친 바다는 너무 넓고 시원해서
결국 그렇게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또 정신없이 바다를 보고 사진을 찍다 보니 16:45시 버스는 놓쳤고, 또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마지막 산티아고행 19시 버스를 탔는데.... 이건 완행이었다. 세 시간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는데, 의외로 해가 지는 갈리시아 해안가를 바라보며 갈 수 있어서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잊지 않고 산 땅끝마을 복권(크리스마스 복권 El Gordo는 지방에서 산 복권이 잘 당첨된다는 속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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