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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Oct 02. 2019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여행기 (2)

갈리시아어,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갈리시아어: 이탈리아 악센트가 섞인,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의 그 중간 어딘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내의 모든 표지판들은 갈리시아어(Gallego)로 쓰여져 있었다.

오른쪽 상단이 갈리시아어, 그 아래가 스페인어, 그리고 그 옆이 영어

사실 j에 해당되는 발음들은 죄다 x로 쓰여져 있었고, o는 ou로, io는 군데군데 o로 적혀져 있는 스페인어 같은 느낌이었다. 더 나아가서 포르투갈어 같이 pez를 peixe로 적지를 않나(점심을 먹은 레스토랑의 이름이 Mama Peixe 였다)...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 그 어드메에 있는 방언 같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갈리시아 지역의 악센트는 또 뜬금없이 이탈리아어 같기도 했다.

식당에서 한 노인분과 종업원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뭔가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종이를 보는 것 처럼 대화의 부분 부분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억양이 이탈리아어 같이 끝이 길게 떨어지는 문장을 내뱉길래 '이태리어로 이야기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단어들이 죄다 스페인어들인 것.


갈리시아 사람들은 죄다 마피아?!

또한 지역색이 뚜렷한 스페인 답게, 갈리시아 지방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편견) 역시 명확하다.

지중해와는 달리 거친 북쪽 바다에서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차갑고 거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는 듯하고, 며칠 전 개봉한 파코 플라사(Paco Plaza)의 신작(Quien a hierro mata)에서는 심지어 마약 밀수 마피아로 비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독재자 프랑코를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내 친구들 중에도 갈리시아 출신 친구들이 있지만 사실 그런 딱딱하고 거친 인상은 받지 못해서 그냥 이들의 편견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산티아고에서의 첫날 저녁, '갈리시아 사람들의 무뚝뚝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게 나를 찾아왔다.


아침부터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며 땅끝마을에 도착하자마자 6km를 걷고, 세 시간에 걸쳐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에 돌아온 나는 너무나 지쳐서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섰는데. 마드리드에서라면 응당 문 앞에서 나를 안내해주어야 할 직원이 없다....

이게 웬 일이람.....

황망히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홀에는 한 명의 종업원이 정신없이 서빙을 하고 있다. 가까이 가서 ‘아무 데나 앉으면 되냐’고 물어보니 퉁명스럽게 미소도 없이 빈자리에 앉으라고 하고.

뭐지? 갈리시아는 원래 이런가?
아니면 인종차별인가 이것도?

소수인종으로서 내 안의 noonchi가 발동되어 종업원을 계속 바라보는데 딱히 나한테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서빙을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거의 20명이 앉아있는 홀을 혼자 커버하고 있는데 마드리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보통 자리에 앉아서 내역서를 받고 그 자리에서 게산을 하지만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기분이 좀 상하기도 해서 빨리 집에 갈 생각에 쭈뼛쭈뼛 바 쪽에 가서 카드를 황망히 들고 주변을 쳐다보다가 근처에 앉아 있던 두 번의 여성분과 눈이 마주치고 어색한 미소를 교환한다. 조금 있다 보니 그 두 분도 계산을 하러 바에 와서 같이 서 있다가 마침 온 종업원에게 대뜸 하는 말이,

'¡Sonríe(좀 웃어라)!'

나는 일순간에 황당하여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는데 종업원이 머쓱하게 웃는다. 뭔가 단골인가 보다 싶고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나도 파안대소를 머금으며, '홀에 손님이 많은데 서빙하는 사람이 한 명 밖에 없으니 힘들 것도 같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더니 다른 여자분이 대뜸 '¡No es nada! Para un gallego....(갈리시아 사람한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냐!)'라고 하면서 종업원의 어깨를 툭툭 치는게 아닌가.


그 뒤 네 명이서 간단히 형식적인 대화 ('Castellano를 참 잘하네' '근 10년을 공부했는데 그래도 기본적인 대화는 할 줄 알아야겠죠' 등등)를 나누고 좋은 밤을 빌어주며 식당을 나섰다. 자칫 기분 나쁜 하루의 마무리가 될 수 있었건만 갈리시아 사람들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만 같고.


그 날 먹었던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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