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의 역사가 묻은 유서 깊은 카페
성수동 핫플레이스의 역사를 논한다면, '자그마치(Zagmachi)'를 빼놓을 수 없다. 자그마치는 성수동의 카페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이다. 이곳은 조명 디자인과 교수인 정청하, 오르에르 김재원 대표가 함께 디렉팅 한 공간으로 '대림창고'보다도 1여 년에 앞서 2014년에 성수동에서 둥지를 틀었다.
'자그마치(Zagmachi)'를 처음 방문한 건 5년 전이다. 대외 활동을 하며 만난 친구가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이라며 나를 이곳에 데려왔다. 인더스트리얼한 공간 속 플로럴한 장식이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에 친구가 이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를 단박에 이해했다.
이곳은 카페가 되기 이전에 인쇄공장이었다고한다. 보통 공간을 리뉴얼할 때, 이 전의 흔적을 지우고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달랐다. 이곳엔 인쇄 공장의 흔적이 여전하다. 공장에서 쓰던 도면함을 카페 탁자로 재활용하고, 뿐만 아니라 책 꽃이 등의 인테리어 가구로 활용했다. 기계 하중을 견디기 위해 설치된 에이치빔도 인쇄 공장 때부터 이어져 온 흔적이다.
성수동에 카페가 많지 않던 직장생활 초기에는 친구를 만날 일이 있으면 자그마치로 불렀다. 내가 느낀 낯선 분위기를 친구에게도 경험하게 하고 싶었고 더불어 성수에 왔으니 '성수 다운' 공간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에 부러 이곳으로 불렀다.
그 이후로 여러 카페들이 생기면서 회사와 거리가 있는 이곳엔 발 길이 뜸해졌지만, 오랜만에 찾은 자그마치(Zagmachi)는 여전히 분위기가 좋고 인기가 많았다.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이곳을 보고 있자니 언뜻 여느 카페와 뭐가 다를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이내 궁금증이 가셨는데 자그마치의 특징을 머리가 금방 기억 해냈다. 자그마치만의 크고 작은 요소들, 이를테면 과거 인쇄 공장이었고, 그래서 공장때부터 쓰던 의자나 도면함 같은 것들이 많이 있고, 인더스트리얼한 공간에 사장님의 취향이 더해진 플로럴한 분위기가 독특하다는 점, 어두운 조명, 그 위에 프로젝터로 쏜 영화 등. 이곳의 분위기와 요소가 금새 떠올랐다.
성수동은 이제 카페가 셀 수 없이 많다. 이곳이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자그마치를 기획한 김재원 대표는 지역마다 어울리는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그마치를 시작할 때도 기존 인쇄 공장의 흔적을 제거하지 않고 살리는 방향으로 디자인했다. 성수동에는 청담과 다른 지역색이 있고 이 동네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공간을 디자인해야 동네가 가진 고유의 컬러를 해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이 여느 다른 도시와 다르게 유난히 아름다운 이유는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유럽의 특징적인 건축물은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그 지역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자, 타지 사람들에겐 구경하고 싶은 '새로움'이다.
최근 성수동 관련 기사를 보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대기업 자본만 남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제2의 가로수길이 될까봐 우려하는 글이 많다. 성수동이 프렌차이즈 소굴이 아닌 이름 자체로 지역색이 연상되는 고유명사가 되려면, 필히, 이 지역의 역사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공간이 디자인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서울 도시에 열병처럼 퍼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성수동에는 자그마치 같은 공간이 많아져야한다. 내가 10년후, 20년후 언제 이곳에 언제 와도 '성수 다움', '자그마치 다움' 이곳 '다움'이 잔뜩 묻은 동네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