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피로스 Jun 11. 2020

백수로 산다는 것

백수일지 D day (2020.06.11)

2020년 6월 11일 목요일. 내게 아무런 의미 없는 날이지만 훗날 이 날을 되돌아봤을 땐, 분명 의미 있는 날이 될 것이라 믿고 이 글을 쓴다.


혹여나 제목과 커버 이미지를 보고 호기심에 이 글을 읽으러 오신 분들이 계실까 싶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글은 누구를 위한 글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함이란 것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부제목에서부터 말했듯이 이 글은 내가 백수로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어온,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나의 어둡고 비루한 일상들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그럼 다이어리에 깨작거릴 것이지 왜 여기 와서 관종 행세를 하느냐고 하신다면, 혹은 글을 읽자 하니 초장부터 글 쓰는 싸가지가 꽤나 부족한 놈인 걸 재빨리 알아차린 분이 계시다면, 양해를 구하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그게 어려우면 악플 없이 조용히 글을 닫아주셔도 괜찮다. 자존감이 바닥이 아니라 지하 3층까지 파고들어 작은 악플 하나에도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그런 상태이기 때문에 사람 하나 살린다 생각하시고 그냥 나가주시라. 부탁이다.


이제껏 일기를 제외하고는, '다나까'가 아닌 말투로 어떠한 글도 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그렇게 예의가 부족한 인간이라고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브런치라는 프로와 아마추어급의 작가들이 활동을 하는 곳에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런 무례한 말투로 글을 쓰는 이유는 분명 이 글은 나의 '일기'라는 점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글을 쓰다 보면 독자가 될 수 있는 어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내 본연의 감정과 진솔한 생각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할까 두려워 선택한 차선책이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봐주길 은근히 바라는 것 같다. 변태 같지만, 사실이다. 누군가 조용히 이렇게 사는 인간도 있구나 하며 (속으로) 욕이든 응원이든 해주길 바라는 것 같다. 그들의 드러나지 않는 관심을 바라는 것 같다. 또 누군가 '나보다 더 열악하고 그지 같은 상황 속에 있는 인간도 있구나'라고 생각하시어 위안과 안도감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들의 양해를 구해보지만, 여전히 읽기 싫으신 분들은 조용히 내 글을 닫아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단연코 확신할 수 있지만 이 글은 말도 안 되게 허접스러울 것이다. 무조건 초안이기 때문이다. 일기를 한번 쓰고 검토하고 마감에 맞춰 퇴고하는 사람은 보통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정말 날 것의 맛이 나는 글이 될 것이다. 동시에 누군가 보면 읽을 가치가 없어 시간낭비라 여겨질 만한 쓰레기가 될 수 도 있겠지만. 이런 글을 쓰는 놈이 무슨 브런치 작가가 되었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이전에 쓴 글이 딱 한편 있는데 이틀 동안 수정해가며 나름 애를 썼다. 그리고 얼떨결에 승인을 받았다. 내게는 여기에 글을 쓸 권리가 있다.


글 쓰는 걸 좋아한다. 많이 쓰진 않지만. 일기도 곧잘 쓴다. 매일은 아니지만. 작가나, 글과 관련된 업에 종사해본 적은 없다. 그냥 백수다. 대학 졸업 후 단 한 번도 취업을 시도한 적도, 그렇기에 취직이란 걸 해본 적도 없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그냥 내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국 난 지금 돈도 없고 직장도 없는 백수다.


지금은 뭔가를 기록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기분이다. 모두가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이해를 구할 수도, 공감을 바랄 수도 없는 그런 자신만의 복잡한 심정으로, 나락에 떨어진 것만 같은 기분으로,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지 않은가. 지금의 나는 내 이 상황을 낱낱이 기록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의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충조평판을 듣기 위해서도,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정면돌파다. 이게 지금의 나를 좌절이라는 늪에서 건질 수 있고, 절망이라는 어둠 속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 생각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뭔가 자랑할만한 걸 드러내고,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백수로서 하찮고 보잘것없는 지금의 나를 그냥 드러내어, 이 비루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아직은 앞날이 깜깜하지만 언젠간 나오게 될 터널의 끝을 기다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마음을 다잡기 위함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나은 내가 오늘의 나를 되돌아봤을 때, 이런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게 해 주기 위함이다.


글을 쓰다 보니, 처음에 쓰고 싶었던 말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채, 온갖 쓸데없는 말들이 튀어나온 듯하다. 뭐 일기란 게 그런 게 아니겠나. 백스페이스를 누르거나 이전 문단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무의식에 의한 의식의 흐름 기법이 일기에선 가능하다.


굉장히 두렵다. 누군가 글을 보고 악플은 아니더라도 속으로 욕을 하며 가지나 않을까, 그렇게 애원했는데도 악플을 달고 가는 사람이 있을까, 이 짓거리가 과연 나중에 무슨 득이 있을까, 아는 사람이 읽으면 어쩌나 등등. 정말 쓸데없는 그런 생각들이다. 다만 그래도 좀 후련하다. 그렇게 쓰고 싶었던 글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구 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난 어제 보다 조금 더 나아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가능하면 매일 쓸 것이다. 분명 몇 주 쓰다가 빵꾸가 날 것이다. 나는 날 잘 안다. 그래도 뭐 괜찮다. 이젠 그런 나의 실수나 결함에 대해 너무 실망하지도 않는다. 예전엔 나 스스로를 얼마나 채찍질하고 다그쳤는지, 털어서 먼지도 안 나올 만큼 후두려 패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 과정에서 자아의 맷집도 세지고, 뻔뻔함도 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기 싫다. 그냥 이게 내 모습이란 걸 인정하고 싶다.


나약한 놈이니 포기가 빠른 놈이니 하셔도 좋다. 그래도 열심히 바뀌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바뀌지 않는 건,  그건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적어도 나는 이제 그렇게 생각한다. 안 되는 건 내버려 두고, 되는 것만 열심히 하며 사는 게 정신 건강에도  나은 것 같다.


뭔가 후련하다.

잠이 잘 올 것 같다.


전국의 백수님들을 응원합니다. 앞으로는 백수가 세상을 지배할 날이 오길. 백수가 직업이 없지 할 일이 없습니까.





이전 01화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시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