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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Jul 12. 2020

나는 불도저가 돼 있었다

백수의 부업 찾기

 

저는 백수입니다. 전 태어나서 취업 걱정이란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취업 준비라는 걸 해본 적이 없거든요. 제 나이 서른 하나. 그래서 지금껏 번듯한 직장이나 목돈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전 그게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 스스로 열심히 살아오지 않은 건 아니라 믿습니다.

 

대학시절엔 언론인의 꿈을 꿨다가 포기하고, 졸업 후 세계일주를 준비했습니다. 돈과 영어를 해결하기 위해 호주에서 2년을 살았습니다. 목표한만큼의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준비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준비해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올해 3월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그저 어리둥절 했습니다. 크게 낙심하지도 좌절하지도 않고, 처음엔 조금만 기다리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더군요.

 

최소 1년은 한국에 머물러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모아 놓은 돈을 여행도 시작하기 전에 다 쓸 수는 없으니 돈을 좀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년 동안 열심히 다닐 직장을 찾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냥 내키지가 않더라구요. 호주에서 2년, 정말 힘들고 하기 싫은 일들을 꾹꾹 참아가며, 개(미)처럼 일했습니다. 그리고 다짐한 게 하나 있습니다. ‘돈을 좀 못 벌어도 내키지 않는 일은 절대 못 한다.’ 그래서 부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일단은 안정적이고 고정된 수입이 필요했습니다. 

 



3월, 제일 처음 관심을 가진 건 에어비앤비(숙박사업)였습니다. 가장 손쉽고도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외 여행을 다니며, 호텔 예약 사이트와 에어비앤비를 자주 이용했던 경험이 있어 숙소 이용에 관한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블로그와 유튜브로 정보를 수집하고, 관련된 책을 사서 체계적인 계획을 짰습니다. 유명한 강사의 원데이 클래스도 5만원이나 내고 듣고 왔습니다.

 

결론. 불법이 아니고서야 내 집이 없으면 에어비앤비는 할 수 없다. 사업자를 내고 합법적인 기준으로 정당하게 에어비앤비를 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업계 종사자가 당당히 이야기하더군요. '서울에 나와있는 매물의 70% 이상이 불법이다.’  그래서 몇 주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게 아까웠지만, 마음을 접었습니다. 돈이 궁해도 불법은 싫었습니다.

 

4월, 블로그와 제휴 마케팅을 통한 수익화를 시도해봅니다. 대한민국에선 무슨 일을 하든 블로그와 SNS 마케팅이 필수더군요. 다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글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방문자가 5명, 10명, 20명 늘더니 하루 방문자 100명을 눈앞에 두고 있었죠. 나날이 한만큼 성장해가는 블로그를 보니 기분이 참 좋더라구요.

 

그리고 다음주에 그만뒀습니다. 3주 동안 100개가 넘는 글을 올렸는데, 제가 쓴 글에 문제가 생겨 블로그의 품질이 떨어지고 방문자가 급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행착오는 피할 수가 없더군요. 수익화를 제대로 시도해보기도 전에 블로그가 아작 났습니다. 나중에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지만, 그 사이에 방문자는 반토막이 났고, 방문자가 한 자릿수가 된 날 사람한테도 해본 적 없는 상소리를 네이X(인터넷) 알고리즘에 퍼부어 주었습니다.

 

5월, 스마트스토어란 걸 알게 됩니다. 부업을 찾던 중 가장 끌렸던 일이기도 했죠.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과 자본을 들여 준비했습니다. 공부공부. 책책. 유튜브유튜브. 여러  오프라인 강의도 참석했습니다. 마침내 사업자 등록과, 통신판매업자 신청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제 스토어도 개설했구요. 이제 그동안 열심히 찾아둔 상품을 스토어에 올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는 정말 허무했습니다. 자괴감도 들더군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놓고,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마음이 변했습니다. 뭔가 제게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마트스토어도 결국 온라인으로 하는 '장사’인데, 일의 본질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파는 물건에 믿음이 있어야 하고, 꾸준히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고객을 상대하는 마인드와 서비스 정신까지 모두 짊어져야 하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일은 제대로 시작하면 재밌을 것 같았지만, 이 일은 시작하면 제겐 단순히 부업처럼 적당히 해선 안 될 일처럼 느껴지더군요. 이것도 하나의 작은 사업인데, 하려면 온 힘을 다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적당히 해도 적당한 수입은 나온다. 너가 안 해봐서 모르는 거다. 그러는데, 그냥 싫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또 포기합니다.

 



전 이런 실패자였습니다. 대학생 때 언론인의 꿈을 포기했을 때도, 호주에서 원하는 목표를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때도, 한국으로 귀국해 초라한 나의 모습과 마주했을 때도 항상 그랬습니다. 전 실패의 두려움이라는 무섭고도 어두운 그림자 안에 늘 갇혀 지냈습니다. 제 자신이 뭔가를 지그시 끈질기게 못하고, 쉽사리 포기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처럼 여겨졌습니다.

 

항상 실패가 두려웠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겁났고, 반복되는 자괴감을 겪으며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 가는 게 무서웠습니다. 나이에 맞는 성취와 기대에 대한 무언의 사회적 압박을 받으며 미래에 대한 공포만 커져 갔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스스로를 단 한번도 성공해본 적 없는, 인생 전체가 패배자인 사람처럼 자신을 왜곡하여 바라보게까지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만큼 두렵지 않습니다. 새로운 인생의 즐거움과 자신감을 찾은 뒤부터 말이죠. 정신승리라고 해야 할까요. 오랜 기간 거쳐온 실패의 과정이 제게 분명한 몇 가지의 교훈을 주었고, 저를 아주 조금씩 천천히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이번 부업 찾기 실패의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됐습니다.

 



첫 째, 실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이자 필요한 과정으로 말이죠. 예전엔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움츠려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항상 오랜 심사숙고의 시간을 거쳤죠. 지금은 좀 다릅니다. 아무리 고민하고 준비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을 수 있단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 일단 뭐든 하면서 배우자는 태도가 생겼죠. 결과적으로 실패한다고 해도 뭔가를 시작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얻는 배움의 가치가 준비의 과정만큼이나 중요하단 걸 알았습니다. 

 

제 인생에 일타일피는 없었습니다. 예전엔 성공이란 게 단 한번의 시도로 깔끔하게 만들어지는 결과인 줄 알았는데 결국 성공이란 무수히 많은 시도와, 여러 번의 작은 실패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배움도 얻었습니다.

 

둘 째, 실패를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겼습니다. 워낙 익숙해져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이상 나를 압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 같습니다. 무식해보이지만 일단 용기 있게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힘, 바로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 생겼습니다.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주저 않고 무너지기를 반복했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예전만큼 오래가진 않습니다. 이젠 오히려 더욱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오기가 생깁니다. 물론 크게 또 좌절하고 낙담할 때가 찾아 올 수 있겠지만, 이젠 워낙 훈련이 되고 맷집이 세져서, 더욱 악착같이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패는 이렇게 저를 불도저 같은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스스로를 평범한 백수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습니다. 바둑의 수를 세듯, 제게 백수란 말의 의미는 백가지의 수, 즉 백번의 도전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비로소, 성공을 위해 필요한 배움과 자세를 얻을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무엇보다 전 아직 성공에 다다르진 못했지만 지금의 이런 제가 좋습니다. 분명 예전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분명한 확신이 생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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