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지 D+31 (2020.07.12)
마지막 백수일지입니다.
시원섭섭하면서도
속으로 굉장히 좋아하고 있어요.
(아싸 이제 안 써도 된다ㅋㅋㅋ)
야, 너 하루에 글 하나씩 쓴다며?
하루 만에 쫑이냐?
는 아닙니다.
이제 백수일지의 형태가 아닌
다른 글들을 이것저것 써 볼 생각입니다.
백수라지만,
하루에 한 편의 글을 쓰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았습니다.
쓰고 싶은 글이 있는데도,
매일 써야 할 글에 시간을 할애하다 보면
다른 글을 써야 할 여유가 좀처럼 나지 않더라구요.
(또 백수라고 하루 종일 글만 쓰진 않습니다.)
백수일지는 오늘부로 끝나지만
다양한 글들을 쓰며,
앞으로도 자신과의 약속인
'하루에 한 편 글쓰기' 는 계속됩니다.
완성된 한 편의 글을 매일 쓴다는
일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알 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과음을 한 날에도 써야 하고,
여자친구와 가평에 놀러가는 날에도 써야 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도 써야 하고,
여자친구와 싸운 날에도 써야 하고,
아버지 생신날, 술에 얼큰히 취한 뒤
부모님이 모두 잠자리에 드신 뒤에도 써야 했죠.
(그러고 보니 매일 글쓰는 일의 최대 적은 술인 것 같네요.)
그러다 보니 참
글을 쓰기 싫은 날에도 뭔가를 써야 하고,
뭔가를 더 쓰고 싶은 날엔 오히려 자제하게 되고,
아이러니한 상황을 많이 겪었습니다.
덕분에 글의 퀄리티는 ㅃ2ㅃ2
다음날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의 글도 여럿 있었지만,
차마 그 글을 지울 수가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던 날도 있었지요.
이게 뭐라고, 안 해도 되는 고생 사서 하면서
그냥 내팽개쳐버릴까 하는 유혹도 얼마나 자주 왔던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인데,
그저 하나의 작은 자기만족이면서도,
그래도 나와의 약속이라고
아등바등 지켜보겠다는 노력을 해온 자신에게
그냥 약간의 칭찬을 좀 해주고 싶습니다.
(너도 참 별종이지만 기특기특해 짜식아.)
시작은 하소연이었습니다.
백수가 된 나 자신과 매일 자문자답하면서
스스로 자책하고, 고뇌하고, 탄식하며 생겨난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지만,
누군가는 봐주기를 바라며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지금 내 모습을
이 곳에 한 자 한 자 옮겨 적어갔습니다.
제게는 참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내면에만 존재하던 그 많고 복잡한 것들을
하나하나 이곳에 글의 형태로 풀어내다 보니
스스로에게 커다란 위로와 응원이 되어 돌아오더군요.
그냥 속이 참 시원하더라구요.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봐줬다는 사실보다
그저 내 안의 것들을
글로 써내며 표현해냈다는 자체가,
용기를 내어 밖으로 드러냈다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이게 바로 글쓰기의 위력인가 봐요.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글쓰기라는 행위는
나 자신을 차분히 정리해나가는 과정이자
나의 연약한 속살을 드러내어
용기 있게 두려움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하나의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을요.
한 달간의 백수일지 여정을 마치며,
그간의 소회를 밝히고 싶었습니다.
놀라웠던 건
그동안 제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고,
좋아요를 눌러주신 분들이 여럿 계셨다는 거예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이 주셨던 그 작은 관심이
제겐 정말 굉장히 소중하고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역시 전 관종이었어요.)
나 자신에게도 고맙고
독자 여러분에게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백수는 글을 씁니다.
백수일지가 아닌 다른 여러 글들로 찾아뵐게요.
다들 행복하세요.
저처럼 말이에요.
마지막 구호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