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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Jul 09. 2020

이젠 장례식장에서도 웃을 줄 압니다

백수일지 D+28 (2020.07.09)

그땐 그게 왜 그렇게 충격적이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행동을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술을 마시며 떠들썩할 수 있어?

심지어 판 깔고 고스돕도 치더라.

유가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아?"


그때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셨던 것 같아요.

"원래 그런 거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례식장에 가본 건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그렇게 가까운 친구는 아니었지만,

같은 반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찾아갔지요.


거기서 목격한 건 당시 제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나이 든 어르신들께서 술을 마시며 신나게 떠들고,

테이블 옆에 모포를 깔고 고스돕을 치고 있던 모습.

예상했던 장례식장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랐죠.


그땐 그 어른들이 

무례하고 개념 없는 사람들인 줄 알았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20대 중반,

친했던 동창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학창 시절 때보다는 약간 더 성숙해진 나이라지만

역시 가까운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에 대해

모두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같이 간 친구들 모두

가볍게 술을 한잔씩들 하며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담소를 나눴지만

천장이 울릴 정도로 크게 웃지도,

고스돕을 칠 생각도 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이번엔 어머님의 먼 사촌이셨죠.

저도 어렸을 적 많이 뵀던 삼촌이셨는데,

얼굴만 희미하게 기억할 뿐,

부고 소식에 그렇게 낙담하거나 슬퍼하진 못했습니다.


신발을 벗고, 어머님의 이름으로 조의금을 전달했습니다.

분향도 하고, 상주와 유족분들께 인사를 드렸죠.

10년이 넘는 세월, 얼굴 한 번 못 본 사람들이었지만

어렸을 적에 남겨진 추억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오랜만에 만난 즐거운 마음을 표현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어른들께 문안을 여쭙고,

내 나이 또래의 먼 사촌들과도 오랜만에 인사도 나누고,

그렇게 나도 모르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10년 전 그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그 나이 든 어르신들께서

왜 그렇게 술을 드시며 웃고 떠드셨는지,

테이블 옆에 모포를 깔고 고스돕을 치셨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오늘 처음으로 전

장례식장에서 신나게 웃어봤거든요.


사람은 나이를 먹고

많은 것을 경험해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나 봅니다.


그땐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시간이 흘러 나도 모르게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거든요.


뭐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름 오늘의 장례식장에서의 시간은

꽤나 인상 깊었던 날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백수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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