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피로스 Jul 07. 202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끼손가락

백수일지 D+26 (2020.07.07)

※ 본문에서 사용된 이미지는 KBS <6시 내고향>에서 무료로 배포한 영상에서 캡처했습니다. 문제의 소지가 생길 경우 이미지는 모두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녁밥을 먹다가,

제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은 건

시골에 사는 한 40대 남성의 새끼손가락이었습니다.


TV에서 아무리 볼 게 없어도,

먼저 채널을 고정시켜본 적이 없는

어머니가 틀어놓은 <6시 내고향>

밥을 먹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양손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저 가만히 멈춰섰습니다.



그는 11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되어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제대로 몸을 가눌 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몸 성한데 한 곳 없는 노부모를 모시기는커녕

반평생 그런 부모님의 시중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남자였습니다.

열 손가락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새끼손가락으로

천신만고 끝에 방송국에 사연을 하나 보냅니다.



이 날 <6시 내고향>에서는

서울의 실력 있는 의사가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연이 있는 집을 찾아

아픈 어르신들을 치료해드리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노부모의 아들은

자신의 수발을 들면서

힘든 농사일까지 하시다가

몸이 불편해지신 부모님을

치료해달라는 사연을 보냈습니다.


제작진과 의료진의 노력으로

노부모의 몸은 이전보다 훨씬 나은 상태가 되었고,

전신이 마비된 아들과 두 부모 역시

밝은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방송이 끝났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느꼈습니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버린 부모님의 수발로 살아왔던

전신이 마비된 자식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까요.

천천히 무너져 가면서,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자식의 부양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며,

혹시나 자신이 잘못되면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남은 평생을 그런 걱정과 고민을 하며 살아온

노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짊어지고 왔던 그들의 삶과 고통의 무게를

전혀 가늠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것들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 모습을 보며

청승맞게도 밥 먹다 말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행운이라는 건 분명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우연한 하나의 계기로

그들에게 삶의 변화와 감사가 생겨나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그 작은 하나의 우연은

아들의 그 작은 새끼손가락에서 시작됐지요.


그리고 그 작은 새끼손가락을 움직이게 만든 건,

작지만 커다란 한 사람의 진심이었습니다.


부모를 향한 자식의 마음

자식을 향한 부모의 헌신

사랑, 감사, 희생



삶의 변화를 이끈 우연한 행운,

행운을 이끌어낸 작은 새끼손가락,

그 손가락을 움직인 선한 진심.


이러한 인간의 선한 마음이야 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리고 여전히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그런 선함을 지니고 있다 믿게 된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TV를 보다가

나를 찾아온 우연한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세상에 널리 행복 바이러스가 퍼지도록.


가족 모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밥먹다가

청승떨며

글을쓰는

백수만세

이전 10화 같이 걷자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