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닭고기의 경우 쓰레기는 수를 세지 않는 법이다. … 아저씨들에게 오늘 버리는 병아리 수가 얼마나 되는지 묻곤 했다. 반응은 한결같았다. 단 한 번도 대답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쓰레기였으니까. 내가 코 푼 휴지 개수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듯 그들이 애써 폐기시킨 병아리 수를 알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 상품 가치가 없는 것은 연민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2. 돼지고기의 경우 이렇게 옴짝달싹할 수 없는 스톨에 갇혀 영문도 모른 채 임신했다 새끼를 낳았다 임신했다 새끼를 낳았다 임신했다 새끼를 낳다가 죽는 것이 모돈의 운명이었다. 보통 돼지들이 살찌는 기계라면, 모돈은 새끼 낳는 기계였다.
3. 개고기의 경우 개농장 운영의 모든 것이 짬 수급에 달려 있었다. 이 불길해 보이는 주황색 액체가 짬밥, 개들이 먹는 사료였다. 5시쯤 음식 쓰레기를 수거한 트럭이 도착했다. 이렇게 갈기 전의 음식 쓰레기를 '생짬'이라고 불렀다.
책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저는 채식주의자가 아닙니다. 채소를 좋아하지만 그만큼 고기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고기를 입에 대는 게 쉬울 것 같지 않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뒤부터, 이제껏 보고 들을 기회가 없어서 몰랐던 사실에 대해 알게 되고 나서부터요.
책을 쓴 저자는 환경운동가도 동물인권보호가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저 평범한 30대 백수였다고 합니다.(이 책에 아주 몰입하게 된 이유) 책을 쓰기 위해 직접 축산업계에 종사해보며 그곳의 실체를 알아보기로 작정한 그는 수년 동안 다양한 닭, 돼지, 개농장을 돌아다닙니다. 책 속에서 그는 독자에게 별다른 자기주장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그저 '보여줄'뿐입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현장의 모습은 그 어떠한 주장보다 강력했습니다.
<고기로 태어나서> 작가 한승태 / 출처: 한국일보
세상의 수많은 고기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내 눈 앞의 밥상 위까지 올라오게 되는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잔혹함과 다른 생명에 대한 폭력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죠. 머리로는 이해하려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면서도,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자행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넘어가기엔 그 충격과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습니다.
인간의 생존 방식엔 정답이 존재합니다. 생명유지와 신체활동에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이 기본이죠. 하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영양소)의 관점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모든 생존 행위는 필수 불가결한 폭력행위가 될 수 있단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생태계에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생존이라는 목적 하에 다른 생명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힘과 권위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본질적으로 같은 생명체로써 다른 생명을 어느 선까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앞으로 우리는 이대로 먹고살아도 괜찮은 걸까.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 질문들만 한가득
마음속에 묻어둔 채로
마지막장을 덮은 책이었습니다.
오늘의 글은
읽고 나서도 찝찝하기만 한
별 볼 일 없는 내용이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저 조차도 아직 한 개의 질문조차
제대로 답을 내리지 못해서요.
책의 마지막 장
저자의 말을 빌리며 글을 마무리짓습니다.
동물들과 마주하며 지냈던 시간은 나를 약자의 고통에 민감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무감각해졌다. 지난 몇 년간 내 삶을 관통한 가장 일관된 정서는 분명 '무감각함'일 것이다. … 처음 동물을 죽일 때는 대상과 나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닭의 목이 끊어지는 순간 내 안에서도 뭔가가 죽는다. … 어디서나 마찬가지였다. 병아리의 고통도, 돼지의 고통도, 개의 고통도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왜 내가 이걸 문제 삼았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