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걷자 엄마
백수일지 D+25 (2020.07.06)
거실에 누워 하염없이 티비를 보고 계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제겐 익숙합니다.
같은 프로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시고,
낮에 밥을 먹을 때나
잠들기 전 거실에서나
조용히 그리고 외로이 티비를 친구처럼 두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문뜩 슬퍼집니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열린 좁은 문틈 사이로
거실에서 흘러나오는 기죽은 티비소리
아들내미 잠드는데 방해가 될까 봐
잘 들리지도 않을 만큼만 틀어놓으시는
그런 나약하지만 존재하고 있는 소리
안방과 거실 사이
닫힌 문, 벽 하나를 두고 느껴지는
엄마와 나의 거리감
누구보다 가까이 지내면서도
그동안 너무나도 멀게 대했던 거리.
어머님께 무심했던
아득한 지난날의 시간
그리고 밀려오는 미안함.
도통 잠이 오질 않습니다.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낮게 깔려 있는
부모님의 허전함과 외로움이 느껴져서요.
거실로 나갔습니다.
"잠이 잘 안 오네."
소파에 누워
바닥에 이불을 깔아 놓고 누워있는 엄마와
아무 말 없이 같이 티비를 봅니다
그리고 그냥
무심코 몇 마디 던집니다.
괜히 미안해서
시시콜콜한 대화로나마
어머님의 외로움을 달래보고자
말을 하면 할수록
괜스레 어머님께 더 미안해집니다.
내가 좀 여유가 있었더라면
우리 어머니 병도 빨리 나으시고
하고 싶은 걸 맘껏 하시면서 바쁘게 살 수 있게
그렇게 해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
집에서 유일한 친구가
티비가 아닐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곁에 있는 자식으로서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불러냅니다.
당장 내가
티비에 밀리지 않고
친구 같은 자식이 되기 위해,
어머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봅니다.
어머님과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상하게 밖에선
남들과 서슴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가족과는 이야기하기가 뭔가 남사스럽고 부끄러운 게 있어요.
이상합니다. 왜 그런 줄은 모르겠으나.
어렸을 적부터 그랬어요.
그래서 내일부터는
어머님과 대화를 조금 더 해봐야겠습니다.
시덥잖은 농담이라도 좋습니다.
아무 쓸모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부모님의 외로움과 허전함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만 있다면요.
그래서 허리가 아픈 어머님이
요즘 재활을 위해 하루에 집 밖을 몇 번 걷는데,
같이 걸어드리려구요.
하루에 한 번
시작해봐야겠습니다.
더 이상 나중에, 언젠가는
이런 말로 부모님에 대한 이 미안한 마음을
외면하고 미뤄두고 싶지 않네요.
"엄마
나도 같이 걷자"
"나랑 같이 가자"
"그냥
왠지 나도 바람이 좀 쐬고 싶네"
"같이 가자 엄마"
우리 엄마 예뻐요
잠깐이지만 엄마에게
백수인 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그런 하루
그러니까 더더욱
앞으로도
백수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