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지 D+29 (2020.07.010)
'취중작문'
술이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쓰는 글이란 말이죠.
맨 정신에 오늘의 글이 감당이 될까...
뭐 이런 것도 새로운 경험 아니겠습니꽈 !
오늘은 아부지 생일입니다.
그런 기념으로
부모님께 헌정시를 하나 올립니다.
아부지 어무니
어무니 아부지
사랑합니다.
아빠도 엄마도
엄마도 아빠도
나와 같은 10대가, 20대가, 30대가 있었다니
이츠리얼리언빌리버블
이제는 부모님이기 전에 두 분을 모두
한 명의 남자와 여자로,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서
먼저 바라볼 수 있도록
불효자가 울며 노력하겠습니다.
나이만 처먹었지
아직도 갈 길이 먼
그렇지만 언제나 효도를 하고픈
불효자 올림
저는 부모님께 일부러 존댓말을 쓰지 않습니다.
존댓말을 쓰면 거리감이 느껴질까 봐
철이 좀 든 것 같은 때부터는
존댓말을 쓰지 말자고 결심했습니다.
(딸 같은 아들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나 봐요.)
서른이 넘는 나이가 되고나서부터는
부모님을 예전의 부모님처럼 보는 게 힘들어졌습니다.
어렸을 적엔 부모님은 원래 태어났을 때부터
그냥 어른인 줄 알았지요.
태어났을 때부터 다 큰 성인인 부모.
근데 지금은 그게 아닌 걸
조금씩 아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엄마도 여자였구나.
아빠도 남자였구나.
엄마도 나처럼 학창시절이 있었고, 10대, 20대를 보냈고
아빠도 나처럼 학창시절이 있었고, 10대, 20대가 있었고
크면서 점점 깨닫게 되는 건
난 참 아버지를 많이 닮았구나.
아들이라서 그런가.
그냥 커가면서 아버지에게 좀 더 공감이 되고
요즘 들어 아부지만 보면 그렇게 짠합니다.
어머니는 좀 다릅니다.
가끔씩 어머니도 아이처럼 슬퍼할 때도
천진난만할 때도, 순수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아 ! 우리 어무니도 부모이기 이전에 여자구나 !
생각해보면 제 부모님은
저 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저를 낳고 뭐 그러셨습니다.
그렇게 보면 참 두 분이 낯설게 느껴져요.
아무튼 전
오늘 취했어요.
그냥 부모님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뭐 이런 말들을 100번은 해드리고 싶지만
숫기가 없는 아들이라
앞에선 그렇게 얘기 못해서
부모님이 전혀 알리가 없는
이런 곳에다만 글을 남겨놓습니다.
백수만세.
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