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3일 단식 실패기
3일 단식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2일 만에 그만뒀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단식은
음식을 먹으며 장기간 진행하는 간헐적 단식이 아닌,
말 그대로 물 이외의 어떠한 음식물도 섭취하지 않는
순수한 금식입니다.
(미량의 소금, 아침 홍초 제외)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체중감량이 목적도 아니고,
특별한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단식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었거든요.
*3일 단식의 효과
1년에 한 두번, 주기적인 단식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단식을 3일 동안 하면 몸의 시스템이 재편된다고 합니다.
손상된 면역세포들이 제거되고
새로운 면역세포들이 생성되어
면역 시스템 자체가 향상된다고 합니다.
또 몸에 축적된 당과 지방이 빠르게 연소되고,
잠자고 있던 줄기세포를 자극해
활동을 재개하도록 만든답니다.
3일 이상 장기간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몸이 체내의 성분을 활용하여 영양소를 섭취한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뇌는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합니다.
배고픔이란 신호를 보내어 몸에 고통을 주기 보다,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몸의 시스템을 전환시킨답니다. 참 신기하죠.
한 마디로 3일 단식은
몸의 대청소, 재부팅과 같은 효과라네요.
20대 초반,
한창 열성적으로 교회를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완벽한 탕자로 살고 있지만)
그때 아무도 모르게 금식기도원에 들어가
5일 단식기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깡이 나왔는지
헛웃음이 나오지만, 몰라서 용감했습니다.
그게 제 인생의 첫 번째 단식이었습니다.
기억납니다.
두 번째 단식은 절에서 했지요.
단식 2-3일차까진 정말 고통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빨리 몸 안으로 뭐든 쳐 넣으라고 아우성치는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저항했던 기분이랄까요.
정말 배고픔이 지독한 고통이 될 수 있단 걸
지금도 선명히 기억할 수 있을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4-5일차에
이전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했죠.
배고픔이 가라앉고, 몸과 마음이 진정되며
새로운 평안함과 홀가분함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때의 기분, 감정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날아갈듯한 몸의 가벼움. 개운함. 상쾌함.
그래서 이번에 다시 그때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1일차
아주 괜찮았습니다.
생각보다 배고픔의 고통이 그리 크지 않고,
견딜만 했습니다.
아침엔 스트레칭과 저만의 루틴을 합니다.
(아. 저 백수입니다. 출근 안해요.)
점심, 저녁 시간에는 식사 대신 산책을 했습니다.
동네 탄천을 3km씩 걸었죠.
밥을 안 먹으니 시간이 많이 남더군요.
하루가 굉장히 길게 느껴졌습니다.
단식 기간동안에는
열량소모가 많은 활동을 자제해야 하기 때문에
과격한 운동이나, 지나친 두뇌활동은 지양했습니다.
살면서 챙겨본 드라마가 10편이 안 되지만
드라마를 한번 정주행 해봤습니다. (ㅋㅋ...)
동생이 추천해준 <이태원 클라쓰>를
백수엄마와 함께 보기 시작했습니다.
배고픔이 느껴질 틈도 없이 드라마를 보게 되더군요.
(이태원 클라쓰 재밌어요)
(정이서, 김다미 멋져요)
2일차
어제와 똑같은 아침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상태는 좀 달랐습니다.
스트레칭을 해도 멍~
책을 읽어도 멍~
일기를 써도 멍~
명상을 해도 멍~ 하다 꾸벅
점심에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이때부터 슬슬 배고픔이 거세게 느껴지더군요.
3km 산책을 하는 동안 식은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누가보면 30km 마라톤 한줄 알았을 겁니다.
이때부터 어머니의 잔소리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젊은 놈이 무슨 놈의 단식이냐,
더 쳐묵쳐묵하기도 모자랄판에 굶고 앉아있냐.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4시경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합니다.
드라마도 눈에 잘 안들어오더군요.
배가 너무 고파서 말 할 힘도 나질 않고,
몸을 움직이기만 해도 식은땀이 뻘뻘 나고,
어제와는 너무 다른 고통었습니다.
거실에 누워 TV만 보고 있는데도
계속 먹는 장면만 나와 짜증났습니다.
그 순간 그렇게 좋아하던
백종원아저씨도 뵈기싫었어요.
한계란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깔끔하게 중단했습니다.
일요일 저녁 6시부터
화요일 저녁 6시까지
딱 48시간, 5끼를 굶고
단식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폭식했습니다.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내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
20대때와는 다르구나. (지금은 30대)
단식이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것 같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정한 어르신분들.)
3일 단식을 목표로 했지만
2일 만에 포기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몸이 약해진 건지, 정신이 나약한 건지
단식 기간동안 스스로를 통제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신체를 통제하지 못하니
정신도 통제할 수 없더군요.
어느 쪽이 더 나약하든, 둘 다 그렇든
확실히 깨달은 건
'몸이 나약해지면 정신도 나약해진다' 입니다.
앞으로 정신줄 똑디 잡고 살려면,
그걸 뒷받침 해줄 수 있는
건강한 신체가 뒤따라야한다는
머리로만 알고 있던 사실을
몸으로 다시 한 번 깨닫게 됐습니다.
체중에 신기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시작한 날 몸무게가 72.8kg이었는데
끝마칠 무렵엔 69.2kg이더군요.
약 3.6kg 감량
마지막 날 저녁 폭식을 한 뒤
다음날 저녁에 다시 한번 체중을 재봤더니
69.3kg이더라구요.
허허허 무슨 변화일까.
다행히 다음날부터 폭식은 없었습니다.
70kg이하로 체중이 유지될 것 같네요.
또 좋았던 건,
몸에 확실히 가벼운 느낌이 생겼습니다.
속이 개운하다랄까요.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머리가 맑고 몸이 가벼워 기분이 좋습니다.
큰일도 시원하게 잘 나옵니다.
모양도 색도 예쁘고 곱더라구요.
몸이 2일 동안 그래도 열심히
몸속 구석구석 청소를 잘 했나봅니다.
3일 단식은
6개월에 한 번씩 해주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전 3개월 뒤에
다시 한번 3일 단식에 도전합니다.
To be continued